최근 경북 구미의 지역농협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잇따라 터지고 있다. 산동농협 120억 사기사건과 선산농협의 수상한 땅 거래 사건 등이 그것이다. 불투명한 인사관행과 조합 고위관계자의 배임 의혹, 정치권 줄대기 등의 의혹도 잇따른다. 농민의 피땀으로 이룩한 농협 자산이 엉뚱한 곳으로 줄줄 새고 있다. 농민을 위한다는 농협이 실상은 농민 위에 군림하는 조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구미 지역농협 최고위층들은 “개인의 일탈”이니 “절차상 문제 없다’는 식으로 책임회피에 급급하다.
4월말에 터진 산동농협 사기사건은 신용이 기본인 상호금융의 근간을 흔드는 중차대한 사건이다. 사기사건에 직접 연루된 농협 감사와 지점장이 2명의 사기꾼과 함께 동반 구속됐다. 감사는 산동농협 최고위층의 소개로 입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속된 감사는 사기범을 장천지점장에게 소개했고, 12억 원이나 되는 돈을 ‘수수료’ 명목으로 받았다는 사실이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지점장도 2억 원이 넘는 돈을 받아 개인채무변제 등에 사용했다.
지점장은 지역농협에서 발급할 수 없는 ‘지급보증서’를 끊어 주었고, 피해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조합장 법인인감증명서도 멋대로 발급했다. 인감증명서는 재산권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아 일반 개인도 가장 엄격하게 관리하는 증명서다. 하지만 산동농협에서는 남의 나라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사건이 백일하에 드러났지만 농협이 반응은 가관이다. “(감사와 지점장)개인의 일탈행위로, 농협이 책임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무책임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지루한 소송전도 예상된다. 피해자들은 농협의 공신력을 믿고 거액의 돈을 맡겼는데, 그 돈을 찾기 위해 경우에 따라 2, 3년은 걸릴 소송으로 시달릴 위기에 처했다.
소송 결과에 따라 농협이 먼저 배상하고 감사와 지점장, 사기범들로부터 돈을 받아내라는 판결이 나올 수도 있다. 이 경우엔 산동농협은 농민의 피땀으로 이룩한 자산을 하루아침에 날리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도 책임지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앞서 선산농협에선 20억 원짜리 땅을 하루아침에 2배가 넘는 44억 원을 주고 매입하는 블랙코미디가 연출됐다.
수익사업 일환으로 하나로마트 건립을 추진해 온 선산농협은 지난해 초부터 건립예정부지에 포함된 주유소 땅을 매입하기 위해 흥정을 해 왔지만 가격이 맞지 않아 미루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2월 급조된 부동산 업체가 이 땅을 20억 원에 매입하자 농협은 바로 다음날 44억 원이나 주고 매입했다. 문제의 부동산업체 주소지에는 탁자와 의자 하나만 덩그러니 있을 뿐 텅 비어 있는 유령업체나 마찬가지였다. 주식회사이지만 그 어디에서도 기업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우연이었을까? 결탁이었을까? 탈세 목적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농협 집행부는 이 같은 사실을 이사회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2016년 용역을 통해 선정된 후보지도 아니었다. 조합원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지만 농협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 수상한 땅거래의 전말과 농협 고위층의 개입 또는 배임 여부는 검경 수사를 통해 가려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산동농협이나 선산농협 경영진들이 이 같은 사실을 몰랐다면 무능이다. 일반 사기업이었다면 무조건 해임 감이다. 알았다면 형사처벌감이다. 그런데도 이들 농협은 “책임이 없다”는 태도다. 그 흔한 사과문 하나 발표하지 않았다. 조합원 무시가 평소 몸에 배어있었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뿐만 아니다. 구미지역에선 농협을 둘러싼 온갖 추문이 나돌고 있다. “별다른 재산이 없던 조합장이 조합장 당선 후 몇 년 만에 재산이 몇 배로 늘었다”, “조합장 아들이나 조카 등 친인척을 마구 채용하는 등 채용비리가 심각하다”,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공사를 벌인 뒤 시공업체로부터 뒷돈을 챙긴다더라”, “채무자가 돈을 갚지 못해 경매에 넘어가게 된 알짜 부동산을 조합장이 제3자를 내세워 헐값에 낙찰 받는다더라”는 것들이다.
소문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하지만 사실이라면 구미 지역농협은 탈태환골 뼈를 깎는 자정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선 사정당국이 나서서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상을 밝힐 필요가 있다. 진통을 극복하고 구미 지역농협은 농민을 위하는 농협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추종호기자 c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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