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하! 생태] 석회암 지대는 비밀의 생태계… 그곳엔 누가 살까

입력
2018.06.02 04:40
12면
0 0

동물 뼈-조개 껍데기 등

탄산칼슘 주성분으로 퇴적

박쥐-육서무척추동물 등

기묘한 생물종의 피난처로

식물은 칼슘이온 저항성 따라

호석회-혐석회 식물로 나뉘어

석회암 바위틈에 자라난 동강할미꽃은 생존하기 위해 지난해 자랐던 잎(왼쪽)을 남겨둬야 하지만 사람들에 의해 잎이 훼손(오른쪽)됐다. 국립생태원 제공
석회암 바위틈에 자라난 동강할미꽃은 생존하기 위해 지난해 자랐던 잎(왼쪽)을 남겨둬야 하지만 사람들에 의해 잎이 훼손(오른쪽)됐다. 국립생태원 제공

모든 동식물이 살아가는 터전은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식물의 성공적인 생존 혹은 쇠퇴는 좋은 터전의 선택에서부터 시작한다. 삶터 즉 공간적인 개념에서 서식처(habitat)는 기후, 수분, 빛, 토양특성, 무기물 등 복합적인 환경조건이 작용한다. 지구는 기후, 강수량, 빛 등 다양한 자연환경을 가지며, 지역마다 독특한 생태계와 서식처를 만들어 왔다. 환경조건에 대응한 다양한 서식처의 발달은 생물종의 적응과 진화를 유도하고 생물종 다양성을 높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한국은 지질학적으로 화강암으로 대표되는 자연환경이 펼쳐져 있다. 다양한 식물군락(식생)이 발달하며 그 중에서도 참나무는 한국을 대표하는 한반도 숲의 주인이다. 이에 더해 일부 지역에서는 비밀스러운 생태계가 숨겨져 있다. 기반암의 물리 화학적 특성에 의해 독특한 생물상이 발달하는 석회암 지역이 그곳이다.

동강의 하식애는 석회암의 물리화학적 침식으로 독특한 경관을 뽐내며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공간으로 자리잡았다. 국립생태원 제공
동강의 하식애는 석회암의 물리화학적 침식으로 독특한 경관을 뽐내며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공간으로 자리잡았다. 국립생태원 제공

빼어난 경치에 생물다양성 증가에 기여

석회암은 동물의 뼈나 조개껍데기 등이 퇴적되어 형성된 탄산칼슘을 주성분으로 하는 퇴적암이다. 석회암은 오랜 세월에 걸쳐 풍화, 침식되면서 매우 특이한 지형 경관을 형성해왔다. 자연이 만든 예술작품으로 불리는 석회동굴, 돌리네, 우발라 등 석회암 지역에서 발달하는 카르스트 지형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도 충북 단양의 도담삼봉과 고수동굴, 강원도 삼척의 환선굴 등 다양한 카르스트 지형이 있다. 석회암 지역의 단층운동, 퇴적 및 침식작용으로 인해 많은 석회동굴과 기암절벽 등이 어우러진 비경이 만들어진다. 석회암 지역은 관광, 지형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생태학적 측면에서도 생물다양성 증가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어둡고 습해서 그 무엇도 살지 않을 것 같은 석회동굴에서도 다양한 담수, 육서무척추동물, 박쥐 등 다양한 동굴 생물군이 살고 있다. 사람들의 손이 쉽게 닿지 않는 공간인 하식애(하천의 침식작용 등으로 인하여 생긴 절벽)는 조류, 식물 등 다양한 생물종의 서식처 또는 피난처로 사용됐다. 특히 동강의 하식애는 한국 특산식물인 동강할미꽃 등 다양한 동식물의 생육공간이 되고 있다.

석회암지역의 대표적인 호석회식물인 동강고랭이. 국립생태원 제공
석회암지역의 대표적인 호석회식물인 동강고랭이. 국립생태원 제공

석회암 지역에서만 생육하는 식물종들

전 세계 연구자들은 석회암 지역에 대한 생태적 연구를 통해 석회암 지역에서만 생육하는 식물종들을 발견했다. 식물학자들은 석회암 풍화토의 높은 칼슘이온이 식물에겐 독성작용과 같은 유해성이 있음을 발견하였고, 고농도 칼슘이온의 저항성이 발달된 식물들을 호석회식물(calcicole plants)이라 부르고 있다. 국내 연구자들도 우리나라 석회암 지역에 분포하는 호석회식물과 다양한 특산식물이 생육하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 주변에 흔하게 관찰되지 않는 산서어나무, 왕느릅나무, 비술나무, 가는대나물, 삼수개미자리, 외대으아리, 꼭지연잎꿩의다리, 나도국수나무, 복사앵도, 시베리아살구나무, 정선황기, 참골담초, 아마풀, 개아마 등의 호석회식물은 강원도 석회암 지역 등에서 숨겨진 보물처럼 살아가고 있다. 호석회식물은 다양한 곤충, 동물 등과 상호작용하며 지역 생태계를 돕고 생물종 다양성 증가에 기여하는 높은 가치를 지녔다.

호석회식물은 다양하지만 이 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정원에 흔히 심는 회양목이다. 회양목은 청송 주왕산, 서울 관악산 등 비석회암지역 일부 지역에서도 자생지가 발견된 바 있지만 석회암이 노출된 암반에서 관찰되는 대표적 관목이다. 동강에 형성된 수식절벽과 한국 고유의 회양목은 우리나라 석회암 지역을 대표하는 중요한 경관이다.

암벽에서 자생하는 회양목은 석회암 지역에서 가장 흔하게 관찰된다. 국립생태원 제공
암벽에서 자생하는 회양목은 석회암 지역에서 가장 흔하게 관찰된다. 국립생태원 제공

호석회식물과 반대로 비석회암 지역에서 흔히 생육하지만 석회암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식물종들을 혐석회식물(calciphobous plant)이라 부른다. 혐석회식물은 토양 내 고농도 칼슘이온에 적응하지 못한 식물이다. 봄철 우리나라를 붉은 빛깔로 물들이는 진달래, 산철쭉 등 진달래꽃속 식물종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온대림 식생을 대표하는 관목인 진달래꽃속은 화강암과 같은 조립질 토양에서 흔하게 관찰되지만 석회암을 비롯해 사문암과 같은 염기성 암석권에서는 자라지 않는다. 진달래는 일본에서는 대마도에서만 일부 발견되며, 중국에서는 한반도와 인접한 일부 화강암 지역에만 생육한다. 이렇듯 한반도가 분포 중심인 진달래가 한반도 내 은밀한 공간인 석회암 지역에서는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은 생태학적으로 흥미롭게 여겨진다.

우리나라 석회암 지역은 북방계와 남방계 식물이 공존하는 특이한 군락 구조를 이루고 있다. 가는기름나물, 벌깨풀 등의 북방계 식물이 자라고 제4빙하기 이후 유존식물(relic plants)의 피난처이기도 하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반도 자생식물종의 약 30%에 해당하는 총 1,280종이 석회암 지역에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매년 동강일대를 수놓는 백운산원추리. 국립생태원 제공
매년 동강일대를 수놓는 백운산원추리. 국립생태원 제공

위기에 놓인 석회암 지역

국내에서도 자연환경 보전과 지속 가능한 발전, 생명사랑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지역주민과 환경단체들의 반대로 무산된 영월댐(동강댐) 건축은 지역 생태계와 생물종 다양성 보전에 큰 영향을 준 중요한 사건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석회암 지역의 독특한 경관, 지질학적 특성, 풍부한 생물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석회암지역 생태계는 여전히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동강할미꽃은 한때 서식처 교란과 남획 등으로 인해 개체수가 급감하였지만, 환경단체, 지방자치 단체의 노력으로 증식과 자생지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연초 동강할미꽃의 꽃이 필 때 일부 관광객들에 의해 잎이 훼손된 개체들이 쉽게 관찰된다. 뜨겁고 건조하며 양분이 결핍된 척박한 석회암 바위틈에서 생존하기 위해 지난해 자라난 잎을 남겨둔 동강할미꽃의 생태학적 특성을 무시한 채 말이다.

강원도 백두대간 일대에 위치하는 자병산은 석회암이 녹아내려 움푹 파인 ‘돌리네’ 습지 등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한 지역이다. 자병산은 한국 고유종인 자병취가 처음으로 발견된 장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지난 수십 년간 자병산은 석회암 채굴로 인해 정상부는 소실되어 사라졌고 산의 다른 지역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개발이란 명목 하에 거대한 산이 사라져버린 이 사건은 크게 주목 받지 못했지만 대표적인 백두대간 훼손 사례다.

정부는 최근 자병산 석회광산에 대한 야생식물 복구사업을 확정했다. 석회암 지대에 잘 자라는 멸종위기 야생식물인 개병풍과 날개하늘나리 2종을 심을 계획이다. 하지만 야생식물이 제대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식물을 심는 것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서식지 복원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우리는 경제 개발과 산업화라는 명목 하에 산과 강을 파헤쳐 왔다. 앞서 살펴본 귀중한 석회암 지역의 파괴뿐 아니라 우리는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실개천과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물을 잃었고, 편하게 숨 쉴 수 있는 공기마저 잃어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이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더 나은 삶의 방향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하는 시기에 놓여 있다. 동식물 종의 절멸, 국가 중요 서식처 소멸과 맞바꾼 경제적 이득이 과연 지역 생태계를 온전히 보전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중요한지 깊게 고민해봐야 할 때다.

류태복 국립생태원 생태보전연구실 전문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