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PBA-WBT 부산컵 국제오픈볼링대회’
동호부 결승전에서 257점 기록한 정재훈씨


볼링계에 재야의 고수가 등장했다. 국제대회 동호인부 결승전에서 같은 대회에 참여한 프로와 국가대표들보다 더 높은 결승 점수를 낸 동호인이 탄생한 것. 파란의 주인공은 대구에서 볼링 동호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재훈(42)씨다.
정씨가 참가한 ‘2018 PBA-WBT 부산컵 국제오픈볼링대회’는 형식만 갖춘 그저 그런 국제대회가 아니다. 국내 최초로 열린 미국프로볼링(PBA) 투어 공식 대회인데다 아시아 최초로 야외에서 경기를 진행해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화재가 됐다. 주최 측에 따르면 18개국 1,000여명의 선수와 동호인이 참가했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통하는 미국프로볼링협회 선수들도 다수 출전했다.
결승전은 5월 26일 오후에 진행됐다. 프로선수와 아마추어 모두 참가할 수 있는 오픈부 결승전에서는 태국 국가대표로 나선 아놉 아롬사라논이 우승했다. 그는 미국프로볼링협회에서도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손꼽히는 앤서니 시몬센을 221-208로 눌렀다. 여자부 결승에서는 국가대표 전은희(서울시설공단)가 KPBA 소속 박진희(타이어뱅크·5기)를 212-184로 물리치고 우승컵을 가져갔다. 최고 점수가 221점, 이런 상황에서 정씨는 동호인부 결승에서 무려 257점을 기록했다. 정씨는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하지만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다들 야외 경기 경험이 많지 않아서 실력 발휘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담백한 기술을 구사하는 동호인들에게 오히려 유리한 조건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레인 컨디션이 저에게 꼭 맞기도 했구요. 레인에 제가 딱 좋아할 만큼의 기름이 칠해져 있었거든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정씨는 실업선수 출신이다. 2003년부터 경상북도 도청 선수로 뛰었다. 9년 동안 전국 체전 및 실업 대회에서 20개 남짓한 메달을 수확했을 만큼 만만치 않은 실력을 자랑했다.
실업팀에 발탁된 계기가 재미있다. 2002년 대구시장기 대회에 동호인 자격으로 참여해서 마스터즈 은메달을 받았다. 그때 경북 도청팀 감독이 그에게 다가와 “자네 볼링 제대로 해보지 않겠나?”하고 제의했다. 그는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2011년에 실업팀에서 은퇴하면서 대학볼링팀 감독 자리를 노리기도 했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그래도 볼링계를 떠나지 않았다. 볼링장에 프로샵을 차리고 꾸준히 볼링 레슨을 했다. 틈틈이 동호인 대회에 나가 트로피도 들어올렸다. 볼링장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슬하에 1남1녀를 두었다.
2015년 볼링장을 떠났다. 지인의 권유로 사업에 뛰어든 거였다. 사업이 잘 됐지만 외도는 오래가지 않았다. 볼링장이 너무 그리웠다.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에 레인이 보일 지경이었다. 결국 다시 볼링장으로 돌아왔다. 지인이 락볼링장을 열면서 “프로샵을 맡아 달라”고 했고, 이를 흔쾌히 받아들인 것이었다. 정씨는 “볼링은 한번 빠지면 그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면서 “동호인들에겐 볼링장이 천국”이라고 말했다.
“군대에서 제대한 후에 처음 볼링을 접했는데, 공이 쭉쭉 뻗어나가서 핀을 쓰러뜨릴 때의 쾌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그때는 집이 경북 고령에 있어서 볼링 가방 메고 대구까지 와서 볼링을 쳤죠. 주변 사람들이 ‘볼링에 미쳤다’고 혀를 찼습니다. 하지만 좋은 걸 어떡합니다. 돌이켜 보면 그 좋아하는 볼링 덕에 모든 걸 다 얻었습니다. 볼링장에서 평생의 동반자도 얻었고, 볼링을 통해 좋은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습니다. 그런 것들이 대회에서 받은 트로피보다 훨씬 값지다고 생각합니다. 볼링에 미쳐서 보낸 시간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정씨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경제적인 조건이 갖추어지면 볼링장을 직접 운영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볼링장 이름은 벌써 정해놓았다.
“‘재야의 고수’라는 간판을 내걸 생각입니다. 볼링의 세계에는 숨은 고수들이 정말 많거든요, 하하!”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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