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트럼프 대통령 열혈 지지 표명
백악관, 트럼프 반응 묻자 ‘답변 회피’
“오늘 로잔느 바의 언급, 그녀의 프로그램을 취소한 ABC방송 결정에 대한 대통령의 반응은 어땠나요?”
“알다시피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에 극도로 집중해 왔습니다. 북한, 무역협상 등에 온 힘을 쏟고 있어서, 다른 문제에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29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의 한 출입기자와 세라 허커비 샌더스 대변인 사이에 오간 문답이다. 해당 기자는 “대통령이 전에 그녀한테 ‘프로그램이 정말 좋다’고 전화까지 걸었는데, 정말 아무 반응도 없었나”라고 재차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대통령이 신경 써야 할 일이 백악관에는 (훨씬 더) 많다”는 것뿐이었다. 사실상 답변을 회피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을 난처하게 만든 사연은 이렇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미국의 TV시트콤 스타 로잔느 바(65)는 전날 밤 트위터에 “무슬림 형제단과 ‘혹성 탈출’이 아이를 가졌다=vj“이라는 짤막한 글을 올렸다. ‘vj’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선임고문을 지낸 밸러리 재럿(62)의 이니셜이며, ‘무슬림형제단’은 이집트 정권이 테러 조직으로 규정한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다. 이란 출신으로 미국인 흑인 아버지와 흑인 혼혈인 어머니를 둔 재럿을 영화 ‘혹성탈출’에 등장하는 유인원에 빗댄 셈이다.
인종차별적인 바의 트윗에 미국은 발칵 뒤집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비난이 쏟아지자 그는 문제의 트윗을 곧바로 삭제했다. 30분 후에는 “밸러리 재럿과 모든 미국인에게 사과한다. 그녀의 사상과 외모를 두고 몹쓸 농담을 해 진심으로 죄송하다”면서 수습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불붙은 분노를 가라앉히기엔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ABC 방송사는 바를 주연으로 내세운 시트콤 ‘로잔느’를 폐지했다. 1988~1997년 선풍적 인기를 끈 시트콤 ‘로잔느 아줌마’의 후속편인 이 드라마는 무려 21년 만인 지난 3월부터 전파를 타며 시청자 1,870만명을 끌어 모은 효자 프로그램이었다. ABC 엔터테인먼트의 채닝 던지 대표는 “로잔느의 발언은 혐오스럽고 불쾌하며 우리의 가치와 맞지 않기 때문에 ‘로잔느’를 철회키로 했다”고 밝혔다. 바의 소속사도 그녀와 결별을 선언했고, ‘로잔느’에 함께 출연하던 동료들도 “역겹다”는 반응을 보였다. 인종차별 공격을 받은 재럿은 “난 괜찮다. (인종차별주의는 옳지 않다는) 교훈의 순간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도마에 오른 이유는 바가 트럼프 대통령의 열혈 지지자이기 때문이다. 전편 시트콤에서 진보 성향 캐릭터로 출연하지만 그는 실제로 지난 대선 때 트럼프 후보를 공개 지지했고, 이번 리메이크작에서도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로 묘사돼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로잔느’를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칭찬한 뒤, 바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성공적인 새 출발을 축하하기도 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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