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ㆍ중도 후보 80%나 공격적 가세
“선심성 공약” 비판했던 4년 前과 딴판
무상 급식ㆍ교복ㆍ통학… 범위 다양해져
재원마련 구체적 로드맵 제시 안 해 우려
삼시세끼 무상급식, 사립유치원 무상 교육, 무상 통학….
6ㆍ13 지방선거에 뛰어든 교육감 후보들이 너도나도 ‘무상’ 공약을 내걸고 있다. 앞선 선거에서 진보 후보들이 무상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선심성 공약’이라며 비판을 쏟아냈던 보수 후보들도 이번에는 공격적으로 가세하는 모습이다. 교육의 국가 책임 강화에 대한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는 평가지만, 구체적 재원 마련 계획이 뒷받침 된 후보는 거의 없다는 점에서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31일 한국일보가 교육감 후보에 출마한 59명의 공약 등을 분석한 결과 83%가 넘는 49명의 후보가 무상급식ㆍ무상교육 등 ‘무상’ 정책을 약속하거나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무상 공약은 후보들의 이념 성향을 뛰어넘고 있다. 중도ㆍ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후보 30명 중에서 80%에 달하는 24명의 후보가 무상 공약을 내건 것으로 확인됐다. 진보 성향 25명 후보 중에서는 “(무상교육, 무상급식 확대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만큼 정부 방침 확정 후 추진할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인 김석준 부산시교육감 후보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상 정책을 약속했다.
앞선 두 차례 지방선거에서 이미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던 무상급식 공약은 이번 선거에서는 더욱 다양해졌다. 이미 공ㆍ사립 구분 없이 초ㆍ중ㆍ고 모든 학생에게 무상급식을 지원하는 인천 지역에서는 보수 성향의 고승의 후보가 “고교 석식도 무상급식으로 제공하겠다”고 했고, 또다른 보수 성향 최순자 후보는 “유치원까지 무상급식을 실현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경기 교육감에 출마한 보수 성향 김현복 후보는 ‘삼시세끼 무상급식’을, 부산에 출마한 중도성향 함진홍 후보는 ‘조식 무상 제공’을 대표 공약으로 앞세우고 있다. 진보 성향의 송명석(세종), 노옥희(울산) 후보 등은 ‘친환경 무상급식 확대’를 공약했다.
무상급식의 공약 주목도가 떨어지다 보니 무상 공약의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7명이 출사표를 던져 가장 치열한 접전을 벌이게 된 울산 지역에서는 중도 성향 구광렬, 장평규 후보와 보수 성향 김석기, 박흥수 후보가 ‘무상교육 확대’와 ‘무상 교복’을 공통적으로 약속했다. 진보 성향의 정찬모 후보는 “사립유치원까지 무상교육을 확대하겠다”고 나섰다. 제주 지역에서는 보수 김광수 후보가 “무상통학 실시로 제주 추자도 내 먼 거리를 오가는 학생들에게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통학비 지원을 하겠다”고 제시했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장 보수 후보들까지 가세하고 있는데, 무상급식을 강하게 비판해 왔던 김태호 자유한국당 경남도지사 후보는 무상급식 전면 확대를, 유정복 자유한국당 인천시장 후보는 보험ㆍ교통ㆍ급식ㆍ교육ㆍ교복 등 ‘5대 무상’을 공약으로 내건 상태다.
이전 두 차례 지방선거에서 무상 공약은 진보 교육감들의 전유물이었다. 무상 카드를 들고 나온 후보들을 두고 보수 교육계와 정치권은 “포퓰리즘의 전형”이라고 비판하며 갈등을 빚기도 했다. 2010년 6월 재선에 성공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당시 시의회가 무상급식 조례안을 의결하자 찬반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에까지 부쳤다가 투표율이 기준치에 미달해 사퇴하는 일까지 있었다.
하지만 4년 만에 선거판이 뒤바뀐 것은 무상급식이 이미 보편화돼 전국에서 안정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데다, 보육ㆍ교육 부문의 국가 책임에 대한 요구가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ㆍ도의 초ㆍ중ㆍ고 학생 570만9,400명 가운데 무상급식 지원을 받는 학생 비율은 82.5%에 달한다. 인천과 세종, 전북, 전남이 공ㆍ사립 구분 없이 전체 초ㆍ중ㆍ고 학생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해 지원율이 100%이고, 지원율이 가장 낮은 대구도 69.2%에 달한다.
무상의 범위를 확대하는 데 막대한 예산이 드는데도 재원 마련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을 내놓지 못하는 것은 공통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교육부에 따르면 17개 시ㆍ도와 교육청의 무상급식지원비는 2012년 2조1,414억원에서 올해 3조5,063억원으로 늘어났다. ‘무상 교복’에 대한 부담도 만만치 않은데, 경기도와 도교육청은 올해 중학교 신입생 12만5,000명 전원에게 교복을 제공하는 데에만 280억원의 사업비가 들 것으로 추산했다.
반면 교육청들이 갚아야 할 지방교육채 잔액은 2012년 2조769억원에서 지난해 12조1,071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었다. 게다가 교육 재정을 일부 부담하는 전국 지자체들의 평균 재정자립도가 올해 예산 기준 여전히 53.4%에 머무르고 있는 탓에, 무상 정책 확대가 결정 되더라도 교육청과 지자체 간 예산 분담 비율을 놓고 충돌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생들의 교육 복지를 지속적으로 증대해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재정 악화로 교육 부문에서의 투자가 소홀해질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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