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주 대구 달서경찰서 학대예방경찰관
“우리 아들을 잡아가는 거 아니죠?”
김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그득했다. 노인은 아들 때문에 1년에 6번 넘게 신고를 했다. 위급한 순간이 지나자 다시 아들 걱정이었다. 김경주(42ㆍ대구달서경찰서 학대예방경찰관)경위는 “무조건 잡아가는 게 경찰이 아니다. 가장 최선의 방법을 찾아드리려는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몇 번의 통화 끝에 노인은 결국 모든 사실을 다 털어놓았다. 12년 전, 아들은 사업에 실패하고 이혼까지 당한 후 폭력적으로 변했다. 물건을 부수고 할머니에게 손찌검을 했다. 김 경위와의 상담 후 아들은 알코올중독치료센터에서 치료를 시작했고, 할머니는 다른 곳에 거처를 정하고 혼자 생활하고 있다. 김 경위는 “아들도 처음에는 ‘사생활 침해 말라’는 논리로 저항했지만 지금은 착실하게 치료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전만 해도 가정 폭력이 일어나면 가까이 사는 이웃이나 친척이 말리기도 하고 조언도 아끼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이웃들 간의 벽이 높아 피해자의 고통이 밖으로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한 경우 엄하게 처벌도 하지만 ‘선한 이웃’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맞습니다.”
김 경위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여성청소년계에서 10년 넘게 근무했다. 2016년에 학대예방경찰관(APO)에 발탁됐다. 여성청소년 업무에서 더 세분화한 분야였다. 현재 학대예방경찰관은 전국에 491명, 대구에 26명이 근무하고 있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김 할머니와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위급한 상황에서 신고를 했다가 잠시 후에 다시 전화를 걸어와 “괜찮다”고 한다. 상황을 파악하려고 이것저것 물어보면 “가족끼리 알아서 할 일”이라면서 짜증을 내기도 한다. 피해자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없다. 피해자와 통화를 할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운다. 경찰청 내에서 학대예방경찰관을 ‘감정 노동자’라고 하는 이유다.
“한편의 추리 드라마 같은 일이 많아요. 다양한 요소를 종합해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뉘앙스를 읽어야 하거든요. 한번은 남편에게 맞았다고 신고한 여자 분이 다시 전화를 걸어와서 출동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뭔가 이상해서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때 남편이 아내의 목에 칼을 겨누는 경우도 있었더라고요.”
이웃은 물론이고 가족 사이에도 폭력이 은폐되는 경우가 많다. 70대 할머니가 폭력 신고를 해서 가정을 방문했다. 할아버지는 “아무 일 없다”고 잡아뗐다. 아들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조사해보니 할머니는 40년 가까운 세월을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다. 얼굴을 때리는 것은 물론 담뱃불로 팔을 지지기도 했다. 아들은 그 동안 이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할머니는 이혼을 원했고 아들은 어머니는 적극 지지했다. 할머니는 얼마 전 이혼에 성공했다.
삶의 무게에 짓눌러 학대자 아닌 학대자로 전락한 경우도 적지 않다. 어느 날 초등학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담임교사가 “아이가 사흘째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어머니와도 통화가 안 된다”고 했다. 집을 방문해보니 쓰레기 천지였다. 초등학생 아이는 고도비만이었다.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머니는 10년 전에 이혼을 했고, 어렵게 어렵게 가정을 꾸려가고 있었어요. 일이 너무 많아 아이를 제대로 돌볼 수 없었구요. 고도비만도 인스턴트 음식에서 비롯된 것이거든요.”
적절한 보호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어머니는 일주일 넘게 버티다가 결국 김 경위의 설득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선 한 시간 넘게 통곡을 했다. 이후 딸은 보호시설로 보냈고, 어머니는 심리치료를 받았다. 얼마 전 그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그때는 힘들었는데, 지금 와 보니 옳은 결정이었다. 좋은 길로 이끌어줘서 고맙다”는 전화였다.
“법집행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불미스런 일이 벌어질 땐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게 밖에 될 수 없는 사회적 요인이 있다는 거죠. 경찰의 업무 영역이 넓어진 것도 변화한 사회적 환경 때문입니다. 경찰은 법 집행자 이전에 ‘선한 이웃’으로 시민들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든 도움이나 상담이 필요하면 주저하지 말고 전화해 주십시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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