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독전'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건 바로 고 김주혁·진서연 커플이다. 마약 중독자 역을 맡아 변화무쌍한 얼굴을 보여준 고 김주혁과 진서연의 모습은 관객들을 공포에 떨게 할 만큼 강렬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진짜 약쟁이 같았다"는 다소 센(?) 관람평들이 이어지는 것도 다 이들의 현실감 있는 연기 덕분이다. 비록 고 김주혁은 이제 만날 수 없는 슬픈 상황이지만, 상대역 진서연에게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29일 스타한국과 만난 진서연은 생각보다 작은 체구와 뽀얀 피부로 놀라움을 자아냈다. 깨끗하고 순수한 이미지가 극 속의 모습과는 상반돼 보여 더욱 낯설게 다가왔다.
이하 진서연과의 일문일답.
-마약중독자 연기,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보령(극 중 이름)은 워낙 다 풀어져 있고 열려있는 상태다. 사실 보령이 못된 짓을 하거나 누군가를 가해하거나 죽이는 장면이 없다. 그 사람만 놓고 봤을 때 제멋대로인 상태인 거다.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을 조장하고 위압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갑툭튀' 느낌이다.
-쉽지 않은 캐릭터인데 어떻게 접근했나?
▲집중해서 연기를 하려고 했다. 사실 보는 사람은 무서울지 몰라도 연기하는 본인은 굉장히 자유롭고 즐겁다. 아기들이 너무 재밌어서 미쳐서 놀 때의 정신상태라 생각했다. 아기들은 약도 안 했는데 놀다가 기절하고 쓰러진다. 그런 상태이지 않을까 싶었다. 연기하는 나는 너무 즐겁고 재미있었다. 오디션장에서 (바로 코앞에서) 그것을 연기했을 때, 지켜보는 이들은 불편하고 위협을 느꼈을 거다.
-노출신도 있는데 15세 등급을 받은 게 좀 놀랍다.
▲감독님이 15세를 염두에 두고 쓰셨다. 나도 연기를 할 때 그렇게 했다. 의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슴 노출을 해서 에로틱을 연출하거나 성적인 것을 조장하는 의도가 없다. 보령이 가슴을 노출하는 것도 아기가 상반신을 벗는 거나 마찬가지다. 단편적으로 표현한 거지 그 이상의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가령, 옷 벗고 스트레칭 하는 장면도 그렇다. 보령은 그냥 답답해서 벗은 거고, 그래서 보령 캐릭터가 더 잘 사는 거다. 그 아이는 약에 취했고, 그런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애다.
-이번에 굉장한 연기 변신의 느낌이 있다.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분위기랄까.
▲사실 난 항상 머리가 길었다. 몇 년 전에 머리를 잘랐다. 성격이 보이시한데 '차도녀' '도시녀' 이런 역할을 시키니까 남의 옷 입은 거 같고 그렇더라. 그래도 연기는 봤던 게 있으니까 했다. 이번에 보령 역할은 자유롭게 막 신나서 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정해놓은 규율 따위는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마음으로. 하하. 어차피 연기 아닌가. 이번에 한 풀었다.
-여성 팬들이 많이 생겼지 않나?
▲예전엔 (팬들 중)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60 대 40이었는데 '독전' 이후 95 대 5가 됐다. 한때는 여성 팬들이 많다는 거에 약간 갸우뚱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반응들이 '속이 시원했다' '무서운데 매력적이다' '보면서 너무 통쾌했다' 등이라 내 연기를 좋게 봐줬다는 것에 기분이 좋다.
-실제 성격은 어떤가.
▲실제로도 내가 여성여성하고 청순한 타입은 아니다. 그런 사람들 보면 너무 부럽고 좋은데, 내가 그렇지는 않다. 그래서 더 보령 역할이 재밌고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여성적이고 내성적이면 상상도 못했을 캐릭터라서, 평소에도 주위 의식을 하거나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좀 닮았다.
-배우가 정년 퇴직이 없는 직업이라 좋다는 얘길 한 것을 봤는데?
▲전에 드라마 촬영 할 때 환갑 넘으신 선생님들이 대본 분량이 말도 안 되게 많은데, 연기 하시는 걸 보면서 너무나 놀랍고 경이로웠다. 대본이 네 시간 전에 나오는데 다 습득을 하셔서 '대체 어떻게 외우는 거냐'고 여쭤보기도 했다. 나도 대본을 외울 수 있는 그날까지 계속 연기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끈을 놓지 않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이가 드는 것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그렇다. 나이를 먹어가는 게 너무 좋다. 어릴 땐 풋풋하고 천방지축인 모습이 좋았다면, 이젠 사랑도 해보고 소중한 사람들도 떠나보내고 장례식도 가고 결혼식도 가고 다양한 일들을 겪었다. 나이대별로 겪는 삶들이 있는데, 그런 게 다 너무 소중하더라. 나이를 먹는 거에 대한 스트레스는 전혀 없다. 그 나이를 먹으면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죽지 않고 느끼게 해줘서 감사하단 생각을 한다.
-혹시 좋아하는 배우가 있나.
▲이번에 '독전'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을 다 만났다. 김성령 선배님, 차승원 선배님, 조진웅 선배님, 김주혁 선배님, 류준열 씨 전부 너무 좋아하는 분들이다. 이해영 감독님은 '천하장사 마돈나' 때부터 인상적으로 봤는데 같이 작업하게 되어 정말 기쁘다.
-유명해지고 싶어서 연기자가 된 것이 아니라고?
▲가끔 직업이 연기자인 게 좀 불공평하단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대부분의 직업인들은 하고 싶은 거 맘껏 하고 따로 자신의 사생활은 있는데, 우린 오픈된 직업이니까. 나는 연기가 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사생활도 오픈되는 상황이니까 잘 조화를 시켜야 한다. 사실 할리우드나 유럽보다 아시아쪽 여배우들에게 이미지를 지켜야 한다는 주입이 더 강한 거 같다. 난 성격상 신비주의는 정말 못할 거 같다.
기대를 처음부터 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딱히 처음부터 '깨끗하고 퓨어한 이미지'로 나가지 않았다. 나도 사람인데, 길거리에서 술 먹고 춤 추고 놀 수도 있지 않나. 만약 보령 같은 애가 그랬다고 하면 잘 어울린다고 할 거다. 하하. 그래서 보령 역할이 정말 좋다!
-할리우드로 가는 건 생각 안 해봤나?
▲할리우드 가면 너무 좋지! 나도 그러고 싶다. 일단 언어부터 좀 익혀야 하지 않을까. 아마 내가 거기 가면 오토바이 타고 다닐 거 같다. 물론 한국의 영화 현장도 장점은 있는데 할리우드엔 또 다른 장점들이 많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방향은?
▲내가 지금까지 해본 거보다 안 해본 게 훨씬 많다. 모든 역할을 다 해보고는 싶은데, '너가 뭐가 강점이냐' '뭘 더 잘할 수 있냐' 물으면 청순하고 예쁜 거보다는 보이시하거나 자유로운 게 더 잘 맞다. 나는 로맨틱 코미디도 너무 하고 싶다. '또 오해영'의 못생긴 오해영 역할 같은 거, 하고 싶다. 드라마 보면서 '저건 그냥 난데?' 했거든. 하하.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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