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 피해보상 1400억원 훌쩍
“최종 취소 어려울 것” 분석도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가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고속철(HSR) 사업 취소라는 승부수를 띄웠다. 전 정부로부터 부실한 국가재정을 넘겨 받은 뒤 새롭게 확인된 국가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건설계획 자체를 뒤엎으려는 것이라기보다는 중국 자본이 참여한 다른 국책사업에서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30일 일간 더스타 등 말레이시아 언론과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마하티르 총리는 28일 기자회견을 갖고 국가부채를 줄이기 위해 HSR 사업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마하티르 총리는 “싱가포르와 맺은 협약이 있기에 사업 중단 확정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 취소 배경에 대해서는 “해당 사업을 계획대로 밀고 갈 경우 많은 자금이 들지만, 수익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총사업비 600억링깃(약 16조원)으로 추산되는 HSR은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와 싱가포르를 연결하는 고속철 건설 사업. 2026년 개통 예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구간(335㎞), 싱가포르 구간(15㎞)을 합쳐 총 길이 350㎞로 완공시 두 도시를 1시간30분만에 주파할 수 있다. 현재 이 구간을 자동차로 달리려면 4~5시간이 걸린다.
문제는 현재 적지 않은 작업이 진행됐다는 데 있다. 물리적인 공사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현지 업계에 따르면 재정을 투입해 노반 구조물을 설치한다는 원칙아래 지난해 토목 기본설계가 끝난 데 이어 책임감리도 선정됐다. 또 철도궤도와 통신, 신호, 차량제작 부문에 대한 입찰공고가 이미 발표됐으며 한국과 중국, 일본,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업체가 물밑 작업을 펼치고 있던 중이다.
말레이시아 현지에서는 사업 중단 결정을 우려하면서도 최종 취소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사업 중단에 따른 피해보상금 규모와 관련, 마하티르 총리는 “대략 5억링깃(약 1,400억원)으로 추산한다”고 밝혔지만 그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싱가포르와의 협의도 남아 있다. 싱가포르 통상산업부도 마하티르 총리의 HSR 사업의 중단과 관련, “말레이 정부로부터 공식 연락을 못 받았다”면서도 “우리는 상호 이익을 바탕으로 HSR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사 발주처인 말레이고속철도공단(MyHSR)과 싱가포르고속철도공단(SG HSR)도 특별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다.
현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마하티르 총리가 정말로 중단시키고 싶은 건 공사대금 85%를 중국이 대출하고 중국 회사가 공사하는 동부해안철도(ECRL) 건설 사업”이라며 “중국과의 ECRL 계약 조건 변경을 위해 HSR 카드를 꺼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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