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녀시대' 열풍 이어
'안녕, 나의 소녀' 개봉
20대 중심으로 큰 호응
日ㆍ中보다 정서 유사하고
학창시절 회상 형식 전개
국내 복고 열풍과 맞닿아
대만에서 건너온 청춘 로맨스 영화 한 편이 감성에 메마른 한국 관객의 가슴을 적셨다. 영화 ‘안녕, 나의 소녀’가 16일 개봉해 다양성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장기 점령하며 28일까지 9만3,434명을 불러 모았다. 멀티플렉스체인 메가박스에서만 볼 수 있는데도 주말에는 하루 1만명이 훌쩍 넘는 관객이 찾아가서 이 영화를 봤다. 10만명 돌파도 무난한 분위기다. 제작비 100억원대 대작 ‘독전’과 할리우드 인기 시리즈 ‘데드풀2’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 같은 중량급 영화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아 더 돋보이는 깜짝 인기몰이다.
‘안녕, 나의 소녀’는 남자주인공 정샹(리우이하오)이 어릴 적 밴드 활동을 함께 했던 첫사랑 은페이(쑹윈화)의 사고 소식을 듣고 20년 전 고교 시절로 되돌아가 미래를 바꾸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수줍어 말하지 못했던 풋풋한 마음이 다시 피어오르고, 꿈이 있어 설레던 시간들이 스크린에서 빛난다. 시대 배경인 1997년 대만의 옛 풍경과 복고 감성도 관객을 추억 여행으로 안내한다. 첫사랑과 우정, 꿈, 성장통 등 청춘 영화의 필수 요소들이 골고루 담겼다.
그래서 청춘 관객들이 호응했다. 메가박스에 따르면 ‘안녕, 나의 소녀’는 20~24세 관객이 32.04%로 가장 많이 관람했고, 25~29세가 18.66%로 뒤를 이었다. 둘을 합치면 20대가 전체 관객의 절반(50.7%)을 넘는다. 영화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20대, 30대, 40대가 관람 비율 30% 안팎으로 고르게 분포되는 여느 영화와는 확연히 다른 특징이다. 또 10대가 무려 11.96%로 높게 나타난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안녕, 나의 소녀’의 대만 극장 매출은 1,350만대만달러(약 4억8,000만원)였다. 한국 극장에서는 이미 7억3,220만원 가량을 벌었다.
‘안녕, 나의 소녀’를 수입한 영화사 오드의 김시내 대표는 “10~20대를 위한 청춘 영화가 거의 없어서 젊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더 반가워한 것 같다”며 “중학생 관객도 의외로 많이 보러 올 정도로 관객 연령대가 다른 영화에 비해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영화의 겉모습은 명랑하지만 사실 내용이 그렇게 밝지만은 않다. 퍽퍽한 현실에서 겪는 상실감과 좌절, 지난 삶에 대한 후회와 반성 등 제법 묵직한 주제도 담겼다. 영화사는 제목을 원제 ‘나를 달로 데려가 줘(帶我去月球)’에서 ‘안녕, 나의 소녀’로 바꾸고, 포스터와 예고편도 로맨스 분위기로 새로 제작했다. 한국 관객이 대만 청춘 로맨스에 보이는 높은 호감도를 겨냥한 전략은 알짜 흥행으로 이어졌다.
한국 극장가에서 대만 청춘 로맨스는 이제 하나의 장르로 인식되고 있다. 2016년 ‘나의 소녀시대’가 재관람 열풍을 일으키며 40만명 흥행을 터뜨린 것이 결정타였다. 대만에서는 2015년 박스오피스 매출 약 4억대만달러(약 143억6,400만원)를 거둔 화제작이지만 한국 흥행은 예상 밖이었다. ‘안녕, 나의 소녀’도 그 후광을 입었다. 여주인공도 같은 배우가 연기했다. ‘나의 소녀시대’에선 왕다이루가, ‘안녕, 나의 소녀’에선 리우이하오가 스타로 떠올랐다. 인기에 힘입어 두 배우 모두 개봉 이후 내한했다. 그에 앞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2)와 ‘청설’(2010) ‘말할 수 없는 비밀’(2008) 등이 대만 청춘 로맨스의 계보를 썼다. 특히 ‘말할 수 없는 비밀’의 경우 촬영지가 대만 여행 필수 코스가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현재 시점에서 과거 학창 시절을 회상 형식으로 그린다는 점에서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인기와 그로 인해 촉발된 복고 열풍과도 궤를 같이한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다’는 깨달음이 국경을 넘어 보편적 공감대를 이룬다. ‘안녕, 나의 소녀’가 1997년 세상을 떠난 가수 장위성의 음악을 모티브로 삼고 ‘나의 소녀시대’의 여주인공이 ‘4대 천왕’ 류더화(유덕화)의 열혈팬으로 그려지지만, 장위성과 류더화의 노래를 모르는 한국 관객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정서다. ‘응답하라 1997’에서는 그룹 H.O.T가, ‘응답하라 1994’에서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시대의 아이콘이었듯 말이다.
김시내 대표는 “대만 영화에서도 주인공들은 교복을 입고 꽉 짜인 수업을 받고 대학 진학을 고민하는데 한국 관객의 학창 시절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일본 영화나 중국 영화보다 정서적으로 친밀하게 느껴지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탁월한 캐스팅도 한 가지 이유로 거론된다. 김형석 영화평론가는 “조각처럼 잘생기고 예쁜 외모는 아니지만 순수했던 시절의 감성을 환기시키는 배우의 고유한 매력과 개성 있는 연기가 돋보인다”며 “조연까지도 캐스팅이 조화를 이룬다”고 평했다.
대만 청춘 로맨스가 지분을 넓힌 가장 큰 요인은 같은 장르의 국산 영화가 전멸한 데 있다. 비록 소수이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순정 로맨스 관객층이 대만 영화에 눈길을 돌렸다. 그럼에도 한국 영화에 미치는 파급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부정적 전망도 나온다. 김형석 평론가는 “판타지가 결합하느냐 마느냐 차이는 있지만 서사 구조가 단조로워 확장성 면에서 한계가 뚜렷하다”고 짚었다. 김시내 대표는 “대만에서도 청춘 로맨스가 대표 장르는 아니고 제작 편수도 많지는 않다”며 “한국에서는 로맨스 관객 수요가 드라마로 흡수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