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한국은 애연가 천국이었다. 식당 술집 다방은 물론 사무실에도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손님이 찾아오면 흔히 담배를 권했다. 신문사 편집국은 ‘오소리 굴’ 같았다. 버스 기차 비행기에는 으레 재떨이가 있었다. 병원에서 의사가, 학교에서 교사가, 아기가 있는 집에서 가장이 맘껏 담배를 피워댔다. 당시 군 생활을 떠올리면, 배급 담배가 생각난다. 담배는 병영생활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영혼의 비타민’이었다. 나라를 지키러 간 남자들이 골초가 돼 나오니, 성인 남성 흡연율은 세계 최고인 80%에 달했다.
▦ 윈스턴 처칠은 잠잘 때 빼고는 시가를 입에서 놓지 않은 골초로 유명했다. 한 기자가 시가를 입에 물지 않은 사진을 찍으려 며칠을 따라다니다 포기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피카소, 체 게바라, 마오쩌둥, 러셀 등도 골초였다. 작가 중에도 애연가가 많다. ‘꽁초’에서 음을 따 호를 만든 공초(空超) 오상순은 평생 하루 20갑 이상 담배를 피웠다. 그의 묘비에는 ‘담배를 사랑하다’라는 글이 음각돼 있다. 폐암으로 숨진 ‘토지’의 작가 박경리도 ‘거북선’ 담배를 하루 한 갑 넘게 피운 애연가였다.
▦ “금연만큼 쉬운 일은 없다. 백 번도 넘게 해봤으니까.”(마크 트웨인) 담배 끊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금연운동이 시작된 지 올해로 30년. 1995년 금연구역이 처음 생겨났고 2006년에는 방송에 금연광고가 등장했다. 덕분에 흡연인구는 계속 줄어 남성 흡연율이 30%대까지 떨어졌다. 그럼에도 가난한 계층의 흡연율 감소 폭은 미미하다. 돈이 있으면 운동이나 취미생활로 스트레스를 풀지만, 저소득층은 끽연과 값싼 소주가 유일한 탈출구인 탓이다. 담배는 노동으로 지친 육신과 고달픈 영혼을 달래주는 필수품이다.
▦ 한국금연운동협의회는 30일 ‘담배 없는 세상을 위해’라는 주제로 금연운동 30주년 기념식을 연다. 지난 30년간 금연운동을 통해 흡연율을 크게 낮췄듯이, 향후 30년 내 ‘흡연자 없는 나라’를 만들겠단다. 관건은 저소득층에게 담배에 의존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담뱃값도 더 올려야 한다. 한국 담뱃값은 한 갑당 평균 4,500원으로 OECD에서 가장 낮은 편이다. OECD 평균(8,050원) 이상으로 올리고 실내외 공공장소를 100% 금연구역으로 정해야 한다. 담배가 사라져야 진짜 100세 시대가 온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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