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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근 칼럼] 노인 빈곤과 교육비 지출

입력
2018.05.29 19: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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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OECD국가 중 노인빈곤율 최고 

 수입 비해 과다한 교육비 지출이 원인 

 노후 대비해 자녀관계도 냉정해져야 

매일 아침 집 근처 초등학교로 운동을 나간다. 20년 넘게 지켜온 습관이다. 그런 내 눈에 언제부턴가 적잖이 기이한 풍경이 종종 포착됐다. 매주 특정 요일에 남루한 행색의 노인들이 인도를 가득 메운 채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띈 것이다. 이른 아침에 그 많은 노인들이 뭔가에 쫓기듯 잰걸음으로 오가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급기야 지난주에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궁금증을 대부분 해소했다. 노인들은 내가 운동을 하는 초등학교 뒤쪽에 자리한 성당에 다녀가는 길이었다.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받기 위해서. 몇몇 다른 성당이나 교회도 비슷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됐다. 단돈 500원이 이른 아침에 그런 인파를 불러 모은다는 게 좀체 믿기지 않았다. 연로한 노인들이 늘 뛰다시피 움직이는 건 한정된 시간 내에 한 군데라도 더 돌아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었다.

처음엔 500원이 너무 소액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당 관계자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우선 500원에도 인도가 마비될 정도로 많은 노인들이 몰리는데 용돈을 더 올리면 감당이 안 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좀 더 큰돈을 주면 밥보다는 술을 사는 데 쓰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문제였다. 그나마 최근엔 주민들의 민원 때문에 사업을 아예 접는 성당이나 교회가 늘어나고 있었다.

2015년 기준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약 4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노인 빈곤율이 높은 이유를 한 마디로 규정하긴 어렵다. 다만 빈곤에 빠진 노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소득이 많았던 젊은 시절에 미리 노후를 잘 준비하지 못한 건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수입을 고려하지 않고 교육비를 과다 지출하는 건 노인 빈곤으로 가는 지름길로 알려져 있다.

2017년 현대경제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으로 도시 거주 2인 이상 가구 중 60만6000 가구가 적자 상태에서 평균 이상 교육비를 지출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들 가구는 전체 가구 평균에 비해 수입이 28% 적은데도 교육비는 85% 이상 더 지출했다. 당장은 자녀의 미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생각에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칫 게도 구럭도 다 잃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한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7년 노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38%가 같이 살지 않는 자녀와 일주일에 1회 이상 만난다고 응답했다. 이 응답에는 설문조사를 할 때 응답자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답을 하는 ‘사회적 소망성 편향’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의심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녀 접촉 빈도가 너무 높게 보고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녀를 많이 둔 부모 중엔 그런 홍복(洪福)을 누리는 경우가 더러 있겠지만. 다만 이 조사에서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자녀와의 접촉도 잦다고 밝힌 점은 예상에 부합하는 것이다.

2007년 숭실대 정재기 교수는 자녀와 동거하지 않는 부모의 소득수준과 자녀와의 접촉빈도 간 관계를 살펴보는 국제비교 연구를 수행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한국에선 부모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자녀들이 부모를 더 자주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가 관찰된 국가는 한국이 유일했다. 시중에 회자되는 “노후에 자녀 얼굴이라도 자주 보고 싶다면 수중에 돈을 꼭 쥐고 있어야 한다”는 말을 실증하는 연구결과라 하겠다.

효심도 돈에 의해 담보되는 사회에선 변변한 노후 준비도 없이 과도한 교육비를 지출하는 건 재고돼야 마땅하다. 자칫 외롭고 비참한 노년을 자초할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은 명문대 진학이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 주는 시대도 아니다. 비정한 사회에서 노후를 인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선 때로는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냉철함과 단호함을 보일 필요가 있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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