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조ㆍ단열ㆍ마감 세울 여유도 없어
양 벽 폴리카보네이트로 채광ㆍ단열
노출콘크리트로 구조ㆍ마감 해결
#“좁다ㆍ넓다 느끼는 감각은 상대적...
작다고 비워놓으면 더 좁게 느껴져”
mm단위로 설계한 흔적 곳곳에
대지면적 30㎡(9.07평), 건축면적 12.61㎡(3.81평). 지난해 서울시 마포구 신수동 한 골목에 지어진 맥스미니움(Maxminimu)은 서 있다기 보다는 끼워져 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건축주인 강태욱 협소주택팩토리 대표는 집과 집 사이 주차장으로 쓰이던 땅을 매입해 집 짓기에 도전했다. “작은 집 중에서도 가장 작은 집을 짓고 싶었다”는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중 한 명인 김인철 건축가를 찾았다.
작아도 너무 작은 집
부동산 컨설팅업을 하던 강 대표가 협소주택에 관심을 갖고 회사를 만든 건 2년 전쯤이다. “당시 협소주택이 여기저기 만들어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건축주들 대부분이 자기가 지으려는 집이 어떤 건지 모른 채로 일을 추진하더군요. 예를 들어 다섯 평짜리 공간에 산다는 것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어요.”
강 대표는 협소주택을 지으려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일종의 모델하우스 격으로 이 집을 짓기로 했다. 협소주택의 아이콘이니만큼 최고로 작아야 했고 디자인의 묘도 최고로 잘 살려야 했다. 그가 찾은 “최고의 건축가”는 김인철 아르키움 대표다. 강남역 ‘벌집 빌딩’으로 알려진 어반하이브를 비롯해 김옥길 기념관, 파주 웅진 사옥 등 수많은 작품을 남긴 그에게도 “이렇게 작은 집은 처음”이었다.
“예전에 협소주택을 지어본 적은 있지요. 그런데 TV에 한 번 나가고 나니까 전국에 자투리땅 가진 사람들이 다 연락을 해오는 거예요. 전부 물렸지요. 이번에도 안 하려고 했는데 들어보니 땅이 열 평이 안 된다더군요. 작아도 너무 작은 거죠.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막상 설계에 들어가니 조건은 더 열악했다. 가로폭 4m 남짓에서 일조권 사선제한과 건폐율 등으로 면적을 떼주고 나니 남은 건 2m가 채 안됐다. 건축가의 할 일은 최대한 면적을 사수하면서 위로 올리는 것뿐. 골조를 세우고 단열재와 마감재를 붙이고 있을 여유가 없어, 구조체가 곧 마감재 역할을 하는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했다. 양 벽면에는 온실용으로 개발된 반투명한 플라스틱인 폴리카보네이트를 써서 채광과 단열을 한꺼번에 해결했다.
“폴리카보네이트는 얇은 두께(2.4㎝)에 비해 안에 공기층이 있어서 단열성이 우수합니다. 반투명이라 빛이 은은하게 들어오는 효과도 있고요. 이 집은 양쪽에 주택들이 바짝 붙어서 전망이랄 게 따로 없었기 때문에 유리 창문은 2층에 작게 하나만 내고 전체적으로 폴리카보네이트를 사용했습니다.”
1층은 사무공간, 2층은 주방, 3층은 침실과 화장실로 구성된 건물에는 2.5층을 만들었다.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중간의 계단참을 조금 더 깊게 파서 작은 책상과 수납장을 짜 넣은 것. 협소주택에 많이 적용하는 스킵플로어(반 층씩 올라가는)구조로, 집 안에 1.5층 높이의 공간을 둘 수 있어 답답한 느낌을 해소할 수 있다.
특이한 것은 건물 중간에 놓인 두터운 콘크리트 벽이다. 계단폭이 40㎝에 불과한 이 극단적인 공간에서 건축가는 굳이 20㎝ 두께의 벽을 건물 가운데 설치했다. 그는 “일종의 가림막 역할”이라고 했다.
“우리가 좁다, 넓다를 느끼는 감각은 상대적이에요. 좁은 계단을 올라와서 생각지 못한 공간이 확 나타날 때 우리는 넓다라고 느낍니다. 이 벽은 앞에 나올 공간을 미리 보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이에요. 좁은 공간일수록 더 많은 공간의 연출이 필요합니다. 작다고 텅 비워 놓으면 공간이 한 눈에 파악돼 더 좁게 느껴져요.”
“좁은 공간일수록 더 많은 연출 필요해”
건물에는 건축가가 “㎝단위가 아닌 ㎜단위로 설계한”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람 어깨 너비만한 계단은 물론이고 변기와 세면기도 시중에서 가장 작은 것을 찾아냈다. 수납장엔 레일 사다리를 달아 위까지 활용할 수 있게 했고, 화장실 벽은 타일 두께조차 아까워 철판으로 마감했다.
극한까지 밀어붙인 설계는 지하층에서 한숨을 돌린다. 맥스미니움의 가장 특이한 점은 지하가 있다는 것이다. 15.13㎡(4.57평) 크기 정방형의 방은, 1층 8.63㎡(2.6평), 3층 7.62㎡(2.3평)과 비교하면 황송할 정도로 넓게 느껴진다. 수직으로만 뻗어 있는 지상층에 비해 수평의 공간감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통상 협소주택을 짓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적은 예산 때문에 지하 만드는 걸 엄두도 못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꿔 지하부터 확보하는 게 영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과거엔 습기차고 어두운 공간이었지만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 얼마든지 지상처럼 쾌적하게 쓸 수 있어요. 무엇보다 사선제한 같은 제약이 없기 때문에 땅을 전부 쓸 수 있는 게 장점입니다.”
원래 상주용 건물로 지었지만 현재 맥스미니움은 게스트하우스로 활용 중이다. 건축주는 “애초에 협소주택의 다양한 활용도를 기대하며 이 건물을 지었다”고 말한다. 그는 몇 년 전부터 불어온 협소주택 열풍을 보면서 흥미와 함께 우려하는 마음을 표했다. “어느 동네에 다섯 평짜리 집이 있다 길래 보러 갔는데 이면도로에 위치한 데다 겉을 흰 스터코(소석회에 대리석 가루와 찰흙을 섞은 외장재)로 마감했더군요. 이 집을 지은 사람들이 막상 살아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건물은 어떻게 될까요.”
그는 협소주택을 꿈꾸는 이들에게 거주 외 다양한 용도를 염두에 두고 집을 지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예를 들어 협소한 공간에 질려 게스트하우스나 카페로 용도를 전환할 경우를 대비해 디자인이나 위치를 더욱 신경 써야 한다는 이야기다. “작다는 건 협소주택의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작기 때문에 평생 살기는 어려운 반면에 작기 때문에 특별한 공간이 될 수 있어요. 건축주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집을 지어야 몇 년 뒤 수많은 건축 폐기물이 양산되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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