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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칼럼] 문재인의 뚝심

입력
2018.05.28 18:3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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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남북정상회담으로 벼랑 끝 북미 살려

개성강한 트럼프ㆍ김정은 끝까지 중재해야

한반도 평화적 해결 위한 ‘운전자론’은 숙명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6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열린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6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열린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청와대 제공

미국 시사잡지 ‘타임’이 지난해 표지인물로 문재인 대통령을 세우면서 ‘협상가’라고 표현했듯이 그는 협상가로서의 운명을 타고난 듯하다. 전쟁 일보 직전의 한반도를 물려받은 문 대통령은 북미 대결 상황을 해소하지 않는 한 단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을 터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ㆍ일ㆍ중ㆍ러 간의 신냉전 기류 속에서 한국의 지도자로서 다른 선택지가 있을 리 없다.

뛰어난 협상가의 첫 번째 조건은 신뢰 형성이다. 그러려면 상대방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적대적인 사람이라도 친근한 태도로 대해야 하며, 사전에 문제의 핵심을 파악해 충분한 대비를 갖춰야 한다. (‘협상의 법칙’, 허브 코헨) 진정성과 신중함, 결단력을 소유한 문 대통령은 적대적 관계인 북미 간 비핵화 중재역할에 적임자인 셈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역할에 “굉장히 신뢰하고 있다”며 ‘A+’를 매긴 게 공연한 선심쓰기는 아닐 것이다.

’한반도 운전자론’을 앞세운 문 대통령에게 임기 초반은 가시밭길이었다. 북한은 자신들이 짜놓은 일정에 맞춰 핵과 미사일을 완성하느라 문 대통령의 대화 제의를 외면했다. 미국도 애초 한국의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화는 더 이상 답이 아니다”거나 “리틀 로켓맨과 협상을 시도하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했다. 이 시기 문 대통령의 심정은 “굴욕을 감내하며 가랑이 밑을 긴다”는 한 측근의 말로 대변된다.

진정한 협상가는 결정적 순간에 찾아오는 단 한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문 대통령에게 평창동계올림픽은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 제안을 기다렸다는 듯이 낚아채 평창올림픽을 ‘게임 체인저’로 활용했다. 한반도 정세는 순식간에 ‘대립과 갈등’에서 ‘평화와 화해’ 국면으로 바뀌었다.

26일 열린 2차 남북정상회담은 문 대통령의 뚝심이 만들어낸 또 한번의 성과다. 앞서 북한이 남북고위급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상의 없이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하자 중재자 역할에 회의론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곧바로 “정상 간 긴밀한 대화 필요성” 입장을 밝히며 운전대를 놓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손을 내민 것은 교착 국면을 풀어갈 해결사로서의 역할을 인정했음을 의미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모두 ‘벼랑 끝 전술’의 달인들이다. 외신 지적처럼 “세계에서 가장 변덕스런 두 지도자”를 중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수십 년간 부동산 거래로 부를 일군 트럼프 대통령은 승부에 대한 집착이 대단하다. ‘거래의 기술’을 쓴 작가 토니 슈워츠는 “트럼프와 수많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가 모든 만남을 자기가 이겨야 하는 시합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 북한 비핵화 문제도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게임으로 여기는 트럼프 대통령은 늘 살얼음판이다.

우리 내부의 어깃장도 어렵게 구축한 중재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2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새로운 내용이나 논의 진전은 없고 두 정상의 당혹감만 확인할 수 있다”고 혹평했다. 북미회담 취소 때는 “문 대통령의 중재 역할이 실패했다”며 외교안보라인의 사퇴를 촉구했다. 지방선거를 앞둔 보수세력 결집 의도이긴 하나 도가 지나치다. 미국이 북한과 협의 장소로 판문점을 택한 것만 봐도 우리의 역할이 인정되고 있다는 상징적 장면이지만 애써 무시한다.

북미 간 비핵화 여정은 아직 메인 이벤트는 시작도 하지 못한 단계다. 북미 정상 간 ‘미치광이 전략’이 앞으로 얼마나 돌출될지 모른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남북정상회담 자문단 회의에서 “지난 10년간 이 순간을 상상하며 구상하고 계획했다”고 말했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이젠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오직 앞만 보고 나아가야 한다. 한반도 평화 정착은 그에게 ‘운명’이나 다름없다.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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