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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 연봉자 돕고 염전노예 외면? 경제약자 파악 못하는 소송구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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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 연봉자 돕고 염전노예 외면? 경제약자 파악 못하는 소송구조제

입력
2018.05.29 04:4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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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인의 경제적 어려움만 명시

구체적 기준 없이 재판부 재량에

재산관계진술서 제출 때도

‘없음’ 허위로 적어도 확인 못해

매년 나랏돈 40억~60억 투입

한부모 가족 등 대상 구체화해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전남 신안군 염전에서 3년 넘게 노예처럼 노동력을 착취당한 서모씨는 2014년 염전 소유주를 상대로 임금체불 소송을 냈다. 오갈 곳 없어 복지시설에 머무르던 탓에 수백 만원의 변호사비용을 낼 수 없던 그는 법원에 소송비용 지원을 요청했다. 법원은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기 위해 소송비용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한다. 그러나 법원은 변호사비를 제외한 인지대와 송달료만 지원하겠다고 했다. 서씨는 이에 불복해 항고했고, 법원은 두 달여 만에 변호사비용을 포함한 소송비용을 지원키로 결정했다.

#대기업 생산직 근로자로 연봉 1억원가량을 받는 문모씨는 회사 동료에게 빌려준 돈을 돌려받기 위해 소송을 냈다. 고액연봉자인 문씨는 법원에 변호사비용을 지원해달라 요청했고, 법원은 보름 만에 이를 받아들였다. 문씨가 소송구조 신청 때 제출한 재산관계진술서에 재산내역을 기재하지 않아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뒤늦게 이를 안 상대방 변호사가 법원에 소송구조취소신청서를 접수했고, 법원은 부랴부랴 문씨의 소송구조를 취소했다.

경제적 약자의 소송비용을 지원하는 소송구조(訴訟救助) 제도가 애매한 기준 때문에 그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소송구조는 2005년부터 행정, 가사, 개인회생ㆍ파산 등으로 적용 범위가 넓어져 신청 건수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구조신청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사실상 재판부 재량에만 달려 있어 형평성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28일 대법원에 따르면 2005년 1,634건이던 소송구조 접수 건수는 2017년 8,228건으로 급증했다. 소송구조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정당한 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법원이 소송에 필요한 비용의 납입을 유예 또는 면제해주는 제도다. 소송비용에는 인지대와 송달료는 물론, 변호사비용, 증인 여비 등이 포함된다.

문제는 소송구조를 받을 수 있는 요건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법원은 ▦신청인의 경제적 어려움과 ▦승소 가능성을 조건으로 요구한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 관련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 소송구조 신청인은 경제력을 입증하기 위해 ‘소송구조 재산관계진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여기에도 빈틈이 있다. 신청인과 가족이 보유한 재산내역을 적어내도록 하고 있지만, 정작 수입이나 보험료 상한선, 보유재산 등에 대한 기준이 없는 것이다.

소송구조제도의 엉성한 자격요건은 대한법률구조공단이 운영하는 법률구조제도와 대비된다. 법률구조공단은 구조 자격을 ‘기준 중위소득 125% 이하의 국민’ 등으로 뚜렷하게 제시하고 있다. 여러 차례 소송구조 지정변호사로 활동해온 최정규 변호사는 “기준이 뚜렷하지 않다 보니 얼마만큼 어려워야 하고, 또 얼마만큼 가난해야 하는지가 명확하지 않다”라며 “게다가 재산관계진술서에 재산이 없다고 허위로 적어도 법원이 이를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지적했다. 이렇다 보니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정이 달라진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법조계에선 매년 40억~60억원의 나랏돈이 투입되는 소송구조의 요건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소송구조 지정변호사로 활동했던 김연기 변호사는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적용 대상과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 손금주 무소속 의원이 지난달 소송구조 지원대상을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한부모가족 등으로 구체화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소관 상임위원회(법제사법위원회)에 접수만 됐을 뿐 아직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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