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반EU 입장 경제장관 거부에
콘테 총리 치명자, 정부 구성권 반납
대혼란 빠져… 총선 재실시 가능성도
지난 3월 이후 총선 이후 80여일간 새 정부 구성에 진통을 겪다가 서유럽 최초의 포퓰리즘 연립정권 출범을 눈앞에 두었던 이탈리아 정치가 다시 대혼란에 빠졌다. 주세페 콘테(53) 총리 지명자가 27일(현지시간) 세르지오 마타렐라(76) 대통령을 만난 뒤 정부 구성권을 반납하고 총리 후보직에서 전격 사퇴한 것이다. 이탈리아의 무정부 상태는 당분간 계속 이어지게 됐고, 올가을 총선을 다시 치를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콘테 지명자는 이날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 극우정당 ‘동맹’과 합의해 제출한 내각 명단 가운데 마타렐라 대통령이 재정경제장관 후보를 거부하자 총리 후보직에서 사퇴한다고 밝혔다. 대통령궁을 떠나며 그는 “‘변화의 정부’를 구성하고자 부여받은 권한을 포기한다”고 말했다. 피렌체대 법학과 교수로 정치 신인인 콘테는 대통령 승인을 거쳐 23일부터 내각 구성 작업을 해 왔다.
대통령과 오성운동ㆍ동맹 연정 간 극한 대립을 낳은 재정경제장관 후보는 경제학자 출신인 파울로 사보나(81) 전 산업부 장관이다. 유럽연합(EU)과 유로화에 회의론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EU의 굳건한 신봉자로, 중도좌파 민주당 집권 때 선출된 마타렐라 대통령은 사보나를 경제 수장에 임명할 경우 시장과 주변국의 불안이 증폭될 것이라면서 줄곧 반대해 왔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실제로 콘테 지명자와의 면담 후 발표한 담화에서 “정부의 보증인으로서 시장과 투자자, 이탈리아 국민과 외국인들 모두에 불안을 주는 반(反)유로 입장의 경제장관을 승인할 순 없다”고 밝혔다.
오성운동과 동맹은 즉각 반발했다. 사보나를 적극적으로 밀었던 마테오 살비니(45) 동맹 대표는 “이탈리아 국민의 이익을 지키려는 정부 구성 노력이 거부당했다”며 “이제 총선을 다시 치르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루이지 디 마이오(31) 오성운동 대표도 “대통령의 거부는 결코 용인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헌법을 배신한 대통령을 의회가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마타렐라 대통령도 “정부 구성이 난국에 빠진 건 내 책임이 아니다”라며 오성운동과 동맹을 비판하고 나섰다. 사보나 후보를 대체할 다른 대안을 제시했지만, 이들 두 정당이 거부해 버렸다는 것이다. 새 총선의 공표 여부에 대해 마타렐라 대통령은 “좀더 기다려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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