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부ㆍ탐방로ㆍ대피소에서 단속
등산객 대부분 환영 “강화를”
매점ㆍ음식점서 버젓이 주류 판매
음료수병 담아오면 손 못써 한계
9월 13일부터 적발 땐 과태료
최근 고교 동창과 함께 설악산 중청 대피소를 찾은 유진형(50ㆍ강원 원주시)씨는 예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고된 산행을 마친 뒤 삼삼오오 모여 삼겹살이나 라면을 안주로 술잔을 기울이던 ‘정상주(酒)’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유씨는 “지난 겨울까지만 해도 피로를 털어버리고 깊은 잠을 청하기 위해 술을 마시는 등산객이 적지 않았으나 최근 산행 중 음주 금지 조치로 이런 문화가 많이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음주산행과 정상주 문화는 연간 4,500만명이 찾는 전국 국립공원의 고질적인 민원이다. 술을 한잔 한 뒤 목소리가 높아져 대피소 내 다른 탐방객들의 쾌적한 숙면을 방해하는 것은 물론 시비가 붙어 욕설과 주먹이 오가는 일까지 벌어지기 일쑤기 때문이다.
특히 험한 산을 오르내리는 가운데 마신 술은 치명적인 사고를 부르기도 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2년부터 7년간 발생한 국립공원 내 안전사고 1,328건 중 64건(4.8%)이 술로 인해 일어났다. 술을 마셔 인지능력과 균형감각이 떨어져 수십m 아래 계곡으로 굴러 떨어져 크게 다치는가 하면 갑작스럽게 심장발작을 일으켜 돌연사 한 경우도 있었다.
급기야 정부는 매년 음주로 인한 산악사고가 줄지 않자 3월 13일부터 국립공원 정상부와 탐방로, 대피소 등지에서 음주단속에 들어갔다.
설악산의 경우 대청봉과 울산바위, 중청대피소 등 모두 39곳에서 음주를 금지했다. 북한산 도봉대피소와 마당바위, 산 정상 부근인 우이암, 지리산 노고단 정상과 반야봉 등 전국 국립공원과 도립공원, 군립공원 대부분이 음주 금지구역으로 지정됐다. 이들 지역에서 술을 마시다 적발되면 계도기간이 끝나는 9월 13일부터 첫 번째 5만원, 두 번째부터는 1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음주단속이 시작된 지 두 달이 지나자 그릇된 산행 문화가 개선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무등산을 찾은 등산객을 대상으로 네 차례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70% 이상이 음주산행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북한산 국립공원 관리공단 관계자는 “일부에서 과도한 규제라는 불만도 나오지만 쾌적한 환경을 위해 더 강력한 단속과 처벌을 요구하는 등산객이 대부분”이라고 달라진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심심치 않게 음주 실랑이가 벌어졌던 한라산 윗세오름 대피소의 모습도 달라졌다. “음주 단속 이후 대놓고 술을 마시는 등산객이 거의 사라졌다. 간혹 술을 마시려는 등산객이 있지만 직원이 제지하면 잘 따라주는 편”이라는 국립공원관리소의 설명이다.
단속에 실효성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산 중턱과 일부 쉼터 등 음주단속 사각지대가 있는 것은 물론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이 소지품을 검사할 권한이 없다 보니 음료수병에 주류를 담아 오면 제지할 방법이 없다. 일부 도립공원들의 경우 매표소 인근 매점과 음식점에서 버젓이 주류를 판매해 등산객들이 음주산행 유혹에 쉽게 빠지기도 한다. 단속과 함께 등산객들의 인식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권경업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은 “한잔 술도 법으로 규제하느냐, 단속의 실효성이 있겠느냐 등 여러 의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대체로 많은 국민들이 음주산행 문화 개선에 공감하고 있다”며 “등산객의 안전을 확보하고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기 위한 정책이 조만간 성과를 낼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속초=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ㆍ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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