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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한다고? 별스럽긴…” 편견에 시달리는 신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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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한다고? 별스럽긴…” 편견에 시달리는 신인류

입력
2018.05.2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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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네이버 카페 '채식공감' 회원들. 고영권기자
채식주의자 네이버 카페 '채식공감' 회원들. 고영권기자

“나는 지방, 고기, 생선 없이도 잘 지내고 있다. 인간은 육식동물로 태어난 게 아닌 것 같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1954년 친구 한스 뮈삼에게 보낸 편지 중)

이원복씨에게 1985년은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대학 3학년이던 평범했던 청년이 소수자의 길로 행로를 바꾸게 된 사건은 그 해말 서울 성북구 안암동의 한 백반집 테이블에서 시작됐다.

“이건 어디서 왔을까?” 평소처럼 친구들과 같이 밥을 먹다 테이블 위에 놓은 돼지고기볶음 접시를 보며 문뜩 떠오른 질문이었다. 그 후 며칠간,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한 가지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사육된 동물이 도살 당해 음식이 됐다. 나도 동물이다.’

대한민국 비건 1세대

고기는 없어서 못 먹는 것이었다. 밥상 위 고기반찬의 유무만으로 가정의 경제수준을 짐작하고도 남았던 때였다. 그런 시절에 스스로 육식을 중단해야 한다는 ‘각성’에 이르렀을 때 그는 돌연변이로 살아야 할 앞날이 두려웠다. 이씨는 “왜 나에게 이런 형벌이 주어지는 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며 “‘고기는 시체, 동물의 사체’라는 생각을 버리려 두 달간 억지로도 먹어 봤지만 구역질만 났다”고 회상했다. 우유와 달걀도 끊었다.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영양학 책을 독학하며 대체 식품을 찾아 헤맸고, 가족에게조차 외면 받았던 고독감을 달래려 도서관 구석에서 불교ㆍ자연주의 철학 서적에 탐닉했다. 이씨는 그렇게 종교적 이유가 아닌 동물권 존중을 위한 완전 채식주의자로 거듭났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대한민국 ‘비건(vegan)’ 1세대로 부른다.

집단이 즐겨 먹는 음식을 거부하는 사람은 환영 받기 어렵다. 군대에서의 가혹행위, 직장에서의 눈총과 폭언, 애인과의 이별까지, 온갖 박해를 버텨 내는 건 그가 치러야 할 대가였다. 몸이 고기를 소화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우리 사회 대부분의 채식인들은 타인들로부터 ‘불편하고, 까다롭고, 자기만 잘난 존재’로 치부 당하기 일쑤다. 1998년 PC통신에서 채식 동호회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십 수년간, 정체를 숨기고 싶어 하는 외계인마냥 그는 혼자였다.

지금까지 완전 채식을 실천하고 있는 그는 현재 시민단체인 한국채식연합 대표를 맡고 있다. 이 대표는 “건강검진에서 실제 나이보다 15년 정도 젊은 상태라는 판정을 받았다”며 “동물의 희생이 아니면 얻을 수 없는 필수 영양소란 없다”고 말했다. 그가 극구 본인의 물리적인 나이를 공개하지 않으려는 것도 이 때문인듯했다.

채식은 적용 범위에 따라 다양하게 나뉘며 이 대표처럼 가장 엄격한 채식주의자는 비건(Veganㆍbeginning과 vegetarian의 합성어)으로 불린다. 육류, 어류, 유제품, 달걀 같은 음식뿐만 아니라 가죽 옷ㆍ가방, 화장품, 비누 등 동물성 원료가 들어간 모든 제품의 사용에도 부정적이다. 그 밖에 유제품만 먹는 락토(Lacto), 유제품ㆍ달걀ㆍ생선 등 먹지만 육류는 먹지 않는 페스코(Pesco) 등이 있다.

건강에도 환경에도 좋은데… 과학은 채식인의 편

그러나 일부 논쟁적인 사안을 제외하면 많은 과학적 근거들은 육식의 이로움보다는 해악을 뒷받침한다. 1980년대 초, 미국 아이비리그 명문 코넬대의 영양학 교수 콜린 캠벨은 발암물질이 투입된 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100주간 각각 동물성 단백질 5%, 20%를 투여하는 실험을 통해 발암물질 자체보다 동물성 단백질의 섭취량이 암 발병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믿기 힘든 결과를 도출했다. 심지어 당시 쥐들에게 투입한 단백질은 카제인으로, 우유 단백질의 87%를 차지하는 성분이었다. 2015년 10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햄, 베이컨, 소시지 등 가공육을 1군 발암물질(Group1)로, 붉은 고기는 2A군 발암물질로 분류해 그 위험성을 알렸다. '1군'이란 발암 가능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물질 그룹이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너무 많은 동물을 희생시킨다는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만 2000~2017년 발생한 구제역으로 살처분 당한 가축이 390만 두가 넘는다. 뿐만 아니라 조류 인플루엔자(AI)로 땅 속에 매장 당한 닭ㆍ오리도 올 겨울에만 500만 마리가 넘었다. 육류의 대량생산과 비용 절감을 위해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진행되는 공장식 축산 방식이 전염병 피해의 가장 큰 원인이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진행해 지난 4일 발표한 ‘가축 살처분 트라우마 현황 실태 조사’ 결과 가축 살처분에 참여한 공무원과 수의사 277명 중 76%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기를 대가로 한 환경파괴도 심각하다. 2006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이산화탄소를 기준으로 추산한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가운데 축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8%로 세계의 모든 교통수단이 차지하는 비중(13.5%) 보다 높다는 보고서를 발표해 파장이 일기도 했다.

무례와 편견에 주춤하는 ‘채밍 아웃’

그럼에도 1세대 채식운동가가 등장한 지 최소 30여 년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초식동물로 살고자 하는 채식인들에게 적대적인 환경이다. 학계에서는 채식인의 비중이 서구 국가들은 10% 이상, 중국ㆍ일본의 경우도 5% 가량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반면 이원복 대표가 수 차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채식주의자라고 응답하는 비율은 통상 1~2% 수준이었다고 한다.

대학생 김모(22)씨는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채식을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른바 ‘채밍아웃’을 했을 때 “풀은 생명이 아니냐” “사람은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쓴다” “채식한다면서 고기 몰래 먹는 사람 많던데 넌 안 그러냐” 같은 편견과 무례를 마주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더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지향하도록 매개하고 싶지만 여전히 그 반응이 두렵고 피로하다”며 “육식을 거부할 땐 알레르기가 있다거나 한약을 먹고 있다고 거짓말 하는 게 단골 멘트”라고 말했다.

가족으로부터 이해 받지 못할 때는 더 힘들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어릴 때부터 육류의 냄새와 식감을 싫어해 먹기만 하면 토했다는 최모(44)씨는 “저한테 차마 억지로 먹이지는 못했던 부모님은 익숙해 지면 먹을 거라 생각하셨는지 일부러 제 앞에서 더 고기 구워 드셨다”며 “그럴 때마다 화장실 옆에서 밥을 먹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덕분에 회사 회식 때도 고기를 먹는 척 연기하는 게 익숙해 진 것 같다”며 씁쓸해 했다.

주변사람들의 ‘특별한 대접’이 외려 채식인들에게는 불편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락토 채식을 하는 박모(43)씨는 “직장 동료들과 식사를 하거나 회식을 할 때마다 개의치 말라고, 혼자 먹는다고도 해 봤지만 식당을 고를 때 저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는 게 보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했다. 대학생 빈경진(24)씨 또한 육류를 먹지 않는 자신을 걱정하는 가족들 때문에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다. 빈씨는 “건강에 문제는 없는지, 사회 생활이 힘들진 않은 지 과도하게 걱정을 하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소량이라도 육류를 먹어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 탓에 평범한 직장을 다니며 완전 채식인으로 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중국어 번역 일을 하고 있는 최모(34)씨는 “대학원을 다니던 중에 비건 채식을 시작했는데 취직을 할까 생각했었지만 점심식사나 회식 등에서 어울리기 쉽지 않을 것 같아 프리랜서로 일하게 됐다”고 말했다.

완전채식은 머나먼 길… 직접 식당 개척도

이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먹을 것 자체가 부족한 것도 큰 고민이다. 빈경진씨는 “고등학교 때 처음 육류를 안 먹는 걸 시도했었는데 급식 메뉴에는 김치와 밥 밖에 먹을 게 없는 날이 많아 금방 포기했었다”며 “식당에서 된장찌개에 고기를 빼 달라고 해도 그대로 들어 있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자양강장제에 들어 있는 타우린 등 생각지도 못했던 식품에 포함된 동물성 원료도 채식인들이 피해가야 하는 ‘함정’이다.

때문에 적극적인 채식 식당 개척에 나서는 이들도 있다. 채식으로 신장 167㎝에 100㎏이 넘었던 비만 문제를 해결했다는 조대원씨는 다이어트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채식식당 뚫기’에 나서는 고수다. 국내 최대 채식인 온라인 커뮤니티 중 하나인 ‘채식공감’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조씨는 “마음에 드는 식당을 직접 찾아 메뉴를 알아보고 어떤 재료를 빼고 대체하면 비건식이 가능한데 해 줄 수 있느냐고 자주 제안한다”며 “조리법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거부당할 때도 있지만 이번 달에도 두 곳이나 비건 메뉴를 만들겠다는 식당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중국집에서 조금만 신경을 쓰면 고추잡채나 송이버섯 볶음, 잡채밥 정도는 채식으로 만들 수 있는데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이우진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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