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실험장 폐기 환영” 1시간만에
북미회담 취소 소식에 아연실색
밤 11시30분 참모회의 긴급 소집
문 대통령 중재 노력 뒤통수 맞은 셈
한반도 위기 지수 치솟을 가능성
북한이 약속대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해 폐기한 24일 정부는 완전한 비핵화 첫 조치가 시작됐다며 일단 환영 입장을 나타냈다. 하지만 밤 늦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ㆍ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취소 결정을 내리자 청와대와 외교안보부처가 발칵 뒤집혔다. 당국자들은 할 말을 잃은 채 수습책 마련에 부산해 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오후 10시 50분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북미 회담 취소 사실을 밝히자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뜻이 무엇인지, 그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려고 시도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후 11시 30분 문재인 대통령은 임종석 비서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서훈 국가정보원장,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을 청와대 관저로 긴급 소집했다. 주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멤버들이었다.
25일 0시부터 열린 NSC 상임위원 긴급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취소 통보와 관련,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된 6월 12일에 열리지 않게 된 데 대해 당혹스럽고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고 윤영찬 수석은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는 포기할 수도, 미룰 수도 없는 역사적 과제”라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당사자들의 진심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회담 가능성을 두고 중재 의지를 다시 한 번 천명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특히 북미 정상 간 직접 대화는 물론 남북ㆍ한미 정상의 소통으로 싱가포르 회담 취소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지금의 소통 방식으로는 민감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정상 간 보다 직접적이고 긴밀한 대화로 해결해 가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정부는 북미 회담 취소 결정 직전인 오후 10시 외교부 대변인 논평 형식으로 북한의 핵실험장 폐기 조치를 환영하고, 북미 정상회담 성공을 기대한다고 밝힌 상태였다. 그런데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북미 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하자 황당해 하는 분위기였다.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결례를 무릅쓰고 북미 정상회담 성사에 올인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상대의 뒤통수를 치는 상황이 벌어지자 그간의 중재 노력이 물거품이 될 까봐 우려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북한이 미국은 물론 중재에 나섰던 한국에 대해서도 배신감을 느끼면 한반도 위기지수는 다시 치솟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한미 군 당국은 이날 오전부터 풍계리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현지 상공을 집중 감시하는 정찰위성을 포함한 한미 연합 자산으로 풍계리 동향을 면밀히 체크했다. 군 당국은 풍계리 현지 한국 공동취재단이 오후 7시쯤 폐기 소식을 전해오기 전인 이날 오후부터 이미 풍계리 현지의 폭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핵실험장 폐기 사실이 확인되자 비핵화로 가는 길이 열렸다며 환영했다. 청와대는 정례 NSC 상임위 회의 후인 오후 4시 30분 “(NSC) 상임위원들은 북한의 핵실험장 폐기가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첫 번째 조치임을 평가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외교부도 북한 핵무기연구소의 폐기 발표 직후 노규덕 대변인 명의 논평에서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환영한다”며 “금번 핵실험장 폐기를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 등을 통해 표명한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실천한 의미 있는 첫 조치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정상원 기자 ornot@hankookilbo.com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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