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영변과 2018년 풍계리
당시 ‘빈껍데기’ 폭파 현장 공개
이번엔 미래 핵시설 포기 이벤트
영변 냉각탑 달리 전문가 빠져
꼭 10년 전과 닮았다. 북한이 24일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면서 보여준 ‘이벤트’는 2008년 6월 영변 냉각탑 폭파 ‘쇼’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폭파 과정이나 의미는 냉각탑 폭파 때와 크게 다르다는 평가다.
상징성이나 형식 면에서는 10년 전과 비슷하다. 북한은 플루토늄 핵무기의 상징인 영변 5㎿ 원자로 냉각탑이 자욱한 먼지 속으로 사라지는 강렬한 장면을 공개하며 비핵화 의지를 과시했다. 이번에 폐기 대상 1순위로 선택한 풍계리 핵실험장은 과거 6차례 핵실험을 도맡아온 핵개발의 아이콘과도 같은 곳이다. 전세계 취재진에게 현장을 공개하고, 생방송이 아닌 녹화방송을 통해 시차를 두고 전세계에 폭파 장면을 공개하기로 한 점도 흡사하다.
반면 내용에서는 차이가 크다. 영변 냉각탑은 2007년 북핵 불능화 조치로 이미 내열제와 증발장치 등 주요 장치가 제거된 ‘빈 껍데기’와 다름없었다. 따라서 북한이 경제지원을 받기 위해 보여주기 식으로 냉각탑을 제거했다는 점에서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이와 달리 풍계리 핵실험장은 일부 갱도가 여전히 활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미래 핵개발의 잠재력을 북한 스스로 포기했다는 의미가 담겼다.
구체적인 폭파 과정도 차이가 있다. 영변 냉각탑 폭파의 경우 2008년 6월 27일 오후 5시 5분 이뤄졌다. 높이 26m 무게 600톤의 콘크리트 구조물인 영변 냉각탑은 하단 부분에서 폭탄이 터지면서 1~2초만에 와르르 무너졌다. 반면 풍계리 핵실험장은 24일 오전 11시 ‘2번 갱도’와 ‘관측소’를 폭파하는 것으로 시작해 5시간에 걸쳐 작업이 진행됐다. 오후 2시 14분 4번 갱도, 오후 2시 45분 생활건물, 오후 4시2분 3번 갱도와 관측소 폭파가 순차적으로 진행됐고, 오후 4시 17분 막사(군건물) 건물로 모든 과정이 마무리됐다.
특히 2008년 폭파 때는 성김 국무부 당시 한국 과장 등 미국 정부 관계자들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기술자들이 폭파 장면을 지켜봤다. 하지만 풍계리 폐기에는 전문가 참여가 배제되고 기자만 참석한 채 진행돼 제대로된 현장 검증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장 취재진 구성도 10년 전과 달라졌다. 냉각탑 폭파 당시에는 북핵 6자회담 당사국 언론이 모두 초청받았지만 이번에는 대북 강경노선을 고수해 온 일본이 빠지고 영국이 빈자리를 채웠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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