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활동이 남북대화에 걸림돌”
北 공세 명분되자 용단 내린 듯
‘北 달래기 효과’ 대화 재개 기대
북한의 체제와 비핵화 의지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왔던 태영호(56)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가 국가정보원 산하 연구기관에서 사퇴한 것으로 24일 알려졌다. 북한이 최근 남북 고위급 회담을 중지시키며 태 전 공사의 대북 비난 발언을 명분으로 삼자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결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태 전 공사는 지난 23일 국정원 산하 국가전략연구원 연구위원 직에 대한 사의를 밝혔으며 이에 따라 면직 절차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태 전 공사는 “100% 자발적인 사의표명”이라며 “대화와 평화를 바라는 국민을 위해 남북 화해와 협력의 모멘텀을 이어나가야 할 상황에 대한 고민 끝에 내린 판단”이라고 주변에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태 전 공사는 이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의 활동이 남북대화 진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고 소속 기관에 부담을 주는 것으로 판단돼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북한은 남북 고위급 회담을 열기로 한 16일 새벽 한미 공군훈련인 맥스선더 훈련과 함께 태 전 공사를 걸고 넘어졌다. 조선중앙통신은 보도문을 통해 “천하의 인간 쓰레기들까지 국회 마당에 내세워 우리의 최고존엄과 체제를 헐뜯고 판문점선언을 비방ㆍ중상하는 놀음도 버젓이 감행하게 방치해놓고 있다”고 밝혔다. 남측 당국이 당시 태 전 공사의 대북 체제 비난을 막았어야 했다는 뜻이다.
태 전 공사는 영국 런던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근무하다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6년 8월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망명했다. 북한 외교관으로서는 역대 최고위급 인사의 망명이었다. 특히 그는 최근 출간한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관련된 일화들을 소개하며 “성격이 급하고 즉흥적이며 거칠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태 전 공사의 사퇴로 어쨌든 남북대화 국면에 제동을 걸었던 북한이 다시 대화에 응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스스로 사퇴한 형식이지만 남측 당국이 성의를 보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서다. 또 북한이 고위급 회담을 중지시킨 또 다른 이유인 맥스선더 훈련 역시 25일 공식 종료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22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에서 “맥스선더 종료일인 25일 이후 남북 고위급 회담을 비롯한 대화 재개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해 남북 간에 공감대가 있음을 시사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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