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적 소리, 압력” 뇌손상 의심
쿠바사건 초음파 공격 논란 재연
왕이 “음향기기 사용 찾지 못해”
미국, 환태평양훈련 중국 초청 취소
남중국해 양국 갈등도 악화일로
최근 중국 남부 광저우(廣州) 미국 영사관의 한 직원이 뇌손상 의심 증상으로 쓰러졌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 4월까지 광저우 영사관에 근무했던 이 직원은 이상한 소리와 압력이 느껴진다고 호소했다. 비슷한 증상을 호소한 사람은 더 없었지만, 이번 사태가 미중 사이에 미묘한 긴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꺼림칙한 쿠바 미국 대사관 직원 뇌손상 사건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2016년 말부터 쿠바 아바나 미 대사관 직원과 배우자들은 어지럼증, 두통, 청력감소 증상을 호소한 바 있다. 당시 쿠바 정부 부인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초음파 공격을 의심하며 쿠바 정부를 사실상 배후로 지목하고 미국 내 쿠바 외교관 17명을 쫓아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 사건 이후 미국과 쿠바 관계는 악화일로다.
미중 양국은 무역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충돌을 간신히 피한 터라, 광저우 영사관 직원의 뇌손상이 의도적 사건이었다면 미중 관계가 급랭할 가능성이 높다. 방미 중인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23일(현지시간) “음향기기를 사용하려 한 기관 및 개인은 찾지 못했다”며 “이 사건으로 양국관계가 손상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진화에 나선 것은 그런 이유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이 문제가 해명되지 않으면 북한 비핵화와 통상문제로 긴장 관계인 미중 관계가 크게 손상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양국이 수년간 경쟁을 벌여 온 남중국해 상황은 더욱 심상치 않다. 미국은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지속적으로 군사기지화를 추진하는 데 반발, 환태평양훈련(림팩)과 관련해 중국에 보냈던 초청을 취소했다. 림팩은 미 해군 주도로 하와이 근해 등에서 2년마다 열리는 세계 최대 다국적 해상합동훈련인데, 한 달을 앞둔 시점에서의 초청 취소는 전례가 없다. 크리스토퍼 로건 동아시아ㆍ태평양 담당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지속적인 군사기지화에 대한 ‘초기 대응(initial response)’으로 중국 해군의 림팩훈련 참가 초청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중국 측 움직임에 따라 더욱 강력한 후속 조치가 이어질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실제로 미군은 남중국해에서 무력 충돌까지 감수하는 행보에 나섰다.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B-52 장거리 폭격기 2대와 연료 지원을 위한 공중급유기 2대를 출격시켜 남중국해 일대에서 비행훈련을 벌였다. 중국이 지난 18일 훙(轟)-6K 등 여러 대의 폭격기로 남중국해에서 해상 타격과 이착륙 훈련을 한 데 대한 맞대응이다. 미국은 중국의 움직임이 이 지역을 군사화하지 않겠다는 2015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의 약속을 위반했다는 입장인 반면, 중국은 자위적 조치라고 반박하고 있다. 왕이 외교부장은 중국군의 작전을 미국이 하와이와 괌에서 활동하는 것과 비교하며 “우리 영토를 지키기 위한 설비를 설치했을 뿐이고 이는 주권국가의 당연한 권리”라고 반박했다.
에반 메데이로스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미국과 중국의 안보 관계는 저강도 긴장 관계에 있었지만, 이제 고강도 긴장 관계로 옮겨가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5년, 10년 동안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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