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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여전히 초임순경… 은퇴가 믿기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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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여전히 초임순경… 은퇴가 믿기지 않네요”

입력
2018.05.24 2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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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북경찰서 안영호 경위

37년간 강력사건 형사로 근무

잔혹한 피해자 시신 보는 괴로움

동료 순직 트라우마 등 고초에도

“사람 때문에 보람 느끼고 버텨

퇴직 후에도 다른 곳에서 봉사”

강력팀 경력만 37년. 안영호 서울 강북경찰서 강력팀장. 배우한 기자
강력팀 경력만 37년. 안영호 서울 강북경찰서 강력팀장. 배우한 기자

“따다다다단 따다다다단~” 드라마 ‘수사반장’의 주제가가 흐를 때마다 TV 앞에 앉은 까까머리 소년의 심장이 대책 없이 뛰었다. ‘한국의 콜롬보’ 최불암이 각종 현장을 누비며 사건을 해결하는 것을 보면서 더 고민할 새도 없이 꿈으로 낙점했다. 스물다섯, 꿈에 그리던 경찰이 됐고 그렇게 37년이 쏜살같이 흘렀다. 까까머리 소년 얼굴에는 주름이 내려앉았고, 어느 샌가 ‘수사반장’ 속 반장과 꼭 닮은 모습이 됐다.

6월 30일 은퇴하는 서울 강북경찰서 강력4팀 안영호(60) 경위는 처음 꾼 꿈 그대로 평생을 ‘형사’로만, 그것도 ‘강력형사’로만 살아왔다. 1981년 첫 발령지인 종암경찰서 형사과를 포함해 북부경찰서(현 강북경찰서)에서 각각 17년, 20년씩 형사 생활을 했다. 형사과가 ‘여성청소년과’ ‘강력팀’ 등으로 분리되기 전부터 방화, 강간, 살인 등 각종 강력사건을 맡아왔고, 89년도 ‘강력팀’이 형사과에서 분리됐을 때부터는 그대로 강력팀 붙박이었다. “형사과로 발령받고 첫 사건이 ‘변사’였어요. ‘첫 사건이 변사면 형사 오래한다’는 속설이 있었는데 그게 정말이 될 줄은 몰랐죠.”

강력팀 경력만 37년, 안영호 서울 강북경찰서 강력팀장. 배우한 기자
강력팀 경력만 37년, 안영호 서울 강북경찰서 강력팀장. 배우한 기자

직접 잡아들인 범인 중에 사형 선고를 받은 이가 10명이 넘을 정도로 흉악한 사건을 많이 만났지만,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하나를 꼽으라면 94년 ‘월곡동 토막살인’이 가장 먼저다. 여관을 운영하던 49세 어머니와 14세 중학생 딸이 어머니의 내연남에게 살해당하고 암매장된 사건이다. 딸이 가출하면서 남겼다는 편지 속 오자와, 범인이 진술서에 쓴 오자가 똑같다는 것을 단서로 집요하게 추궁해 살인 자백을 받아내면서 사건은 해결했지만, 현장 검증에서 본 참혹한 시신 모습은 지금도 어제 본 것처럼 생생하다. “시체를 37토막 내 비닐봉투에 담았는데, 봉투를 여는 순간 엄청난 악취와 함께 얼굴 가죽이 벗겨진 알머리가 튀어나왔어요. 그게 어찌나 잊혀지질 않던지 한동안 길가다 검은색 비닐만 봐도 욕지기가 치밀었죠.”

끔찍한 사건 현장도 그를 괴롭혔지만, 범인들을 마주할 때마다 느끼는 참담함도 컸다. 만삭 아내와 세 살 난 딸을 죽인 남편에게 왜 죽였냐 물으니 “아내는 말다툼하다 죽였고, 죽은 엄마를 붙잡고 우는 애를 보니 엄마 없이 살아 뭐하겠냐는 생각이 들어 죽였다”는 진술을 들었을 때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사건을 해결한 뒤 ‘고맙다’는 피해자들의 말을 전해들을 때는 결국 또 ‘사람’ 때문에 이 일을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폐쇄회로(CC)TV도 없고 통신기록도 없어 ‘몸으로 구르고 범인과 눈치싸움’하며 수사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부심 하나로 버텨왔다지만 험난한 현장을 매번 누비면서 회한의 순간이 정말 한번도 없었을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딱 한번 했어요. 함께 현장에 출동한 동료가 강도의 칼에 맞아 순직하는 걸 봤을 때, 나도 언제든지 저런 상황에 처하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래도 결국 여태껏 무사히 살아남았으니 운이 좋은 걸까요.”

그는 지금도 신고를 받으면 현장에 가장 먼저 출동한다. “마음만은 여전히 초임순경인데 퇴직할 때라니 믿기지 않아요. 경찰로 할 수 있는 일은 끝났지만 이제 다른 곳에서 사람들을 돕는 일을 찾아봐야죠.”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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