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경제 불확실성 확대를 들어 위원 7인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금통위가 이달 회의에서 금리 인상을 주장하는 소수의견을 내비친 뒤 7월 차기 회의에서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시장의 예측이 사실상 깨진 것이다. 한은의 금리 인상 유보가 기존 성장 전망(올해 3.0%)에 대한 자신감 약화로 해석되면서 우리 경제에 대한 불안감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금통위는 24일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행 연 1.50%로 유지한다고 24일 밝혔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1.25→1.50%) 이후 6개월째 동결이다. 금통위 의장인 이주열 한은 총재는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대내외 불확실성이 한층 높아진 만큼 각별한 유의가 필요하다”며 금리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금통위는 배포 자료에서 ▦주요국 통화정책 정상화 ▦보호무역주의 강화 ▦고용여건 개선 지연을 국내 경제 성장을 저해할 위험요인(하방리스크)으로 꼽았다. 금통위는 다만 “설비투자가 다소 둔화됐지만 소비와 수출이 양호하다”며 “국내 경제의 성장 흐름은 기존 전망 경로와 대체로 부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시장의 주요 관심사였던, 금리 인상 신호로 해석될 만한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이번 결정을 두고 금리 인상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온 한은의 기존 행보와 결이 다르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 총재는 지난달 12일 금통위 기자회견에서 ‘낮은 물가 때문에 금리를 올리기 어렵다’는 지적에 “금리 결정을 할 때는 현재의 물가보다는 1년 후의 물가를 더 우선하고 있다”고 선을 그었고, 해외 출장 중이던 이달 4일에는 “금리를 올릴 수 있을 때는 올려야 한다”는 말로 금리 인상 여건이 조성됐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한은 수장의 이러한 입장 표명이 시장의 ‘7월 금리인상설’을 강화한 것은 물론이다.
전문가들은 한은이 최근 발표된 국내 실물지표 악화에 신중론으로 돌아섰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고용, 산업생산, 수출 등 내수경기 지표가 좋지 않다보니 금통위가 어쩔 수 없이 금리 동결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이달 16일 발표된 고용동향 지표에선 취업자 증가폭이 3개월 연속(2~4월) 10만명대에 머물렀고, 이달 초엔 지난달 수출 증가율(전년동기 대비)이 18개월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말 발표된 산업활동동향 지표에선 제조업 생산 부진, 설비ㆍ건설 투자 감소 속에 전산업생산이 2, 3월 두 달 연속 감소(전월 대비)했다. 시장 일각에선 이 총재가 지난 17일 임지원 신임 금통위원 취임식에서 “대내외 여건이 만만치 않아 향후 경제상황을 낙관하기 어렵다"며 강한 우려를 표명한 것이 한은의 ’유턴 신호’였다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금통위가 하반기 4차례 회의(7, 8, 10, 11월)를 남긴 가운데, 한은 금리 인상 시기는 오리무중에 빠진 분위기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2분기(4~6월) 국내 실물경기 지표가 확인한 뒤에야 통화정책 방향을 명확히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지난달 금통위 의사록에서 일부 위원들의 금리 인상 주장이 확인된 만큼 하반기에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며 “다만 구체적 시기는 4~6월 고용, 물가, 산업활동 지표가 나와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 실장은 “일각에서 주장하는 침체 국면까지는 아니더라도 실물경기가 회복세라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한은이 하반기에 금리를 한 번 정도 올릴 것 같지만, 경기지표가 나쁠 경우 연내 금리 인상을 장담하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에 따른 내외금리차 확대,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인상 압력 등 대외 요인들도 한은 금리 인상 시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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