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27일 미국 세인트루이스 소재 워싱턴 대학교에서 뉴스가 하나 발표되었다. 학부와 대학원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존 맥도넬(John F. McDonnell)이 2,000만 달러(216억원)를 기부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뉴스를 접하면서 10년도 훌쩍 지난 2006년 8월말 워싱턴대 주차장에서 우연히 만난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그 때 나는 대학원 박사과정에 막 입학했고, 나에게 학비와 생활비를 주실 분을 만나러 가는 중이었다. 마침 교수인 듯 보이는 할아버지가 10년도 더 되어 보이는 자동차에서 내리고 있길래 길을 물어 보았다. 그는 자신을 따라오라며 내가 가야 할 건물의 사무실까지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내가 만나기로 약속한 존 맥도넬이라고 소개했다.
솔직히 많이 놀랐다. 우연히 만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한국의 쏘나타 정도 되는 자동차를 손수 운전하는 허름한 재킷의 할아버지가 수많은 전투기와 항공기를 만들었던 맥도넬-더글러스의 대표였기 때문이다. 이후 내가 박사학위를 받은 2010년까지 4년 동안 그를 일년에 대여섯번 이상 만났지만 그의 소탈한 모습은 한결같았다.
1938년 태어나 한 살 때 세인트루이스로 이사온 그는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하고, 아버지 제임스 맥도넬(James S. McDonnell)이 세운 맥도넬-더글러스에 1962년 입사했다.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사장을 역임하고, 1988년부터 1997년까지 최고경영자(CEO)겸 이사회 의장을 지냈다. F-4 팬텀, F-15 이글 등의 전투기와 MD500ㆍ아파치 등의 헬리콥터, 그리고 DC-10 등의 민간항공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고 군수산업이 쇠락의 길로 들어서면서 회사를 보잉사와 합병시키고 난 후 1997년 은퇴했다.
그가 최고경영자로 있는 동안 그와 그의 회사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는 은퇴 이후에 더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세인트루이스 소재 워싱턴 대학교에서의 활동이다. 은퇴 직후인 1997년 그는 아시아 자문 위원회(International Advisory Council for Asia)의 설립을 주도했다. 대학교의 교육 및 연구활동이 보다 국제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특히 아시아 지역과의 연계에 관심을 가졌다.
2004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자문 위원회 회의에서 연세대학교 송자 전 총장을 비롯한 워싱턴 대학교 한국 동문들은 보다 항구적인 활동을 위해 재단을 설립하도록 그를 설득했다. 이에 2005년 3,000만 달러(324억원)을 기부하여 맥도넬 아카데미(McDonnell International Scholars Academy)를 만들었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 인도, 태국, 싱가포르 유수 대학을 졸업한 인재들을 세인트루이스로 데리고 와서 대학원 교육과 더불어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미래의 지도자를 키운다는 것이 목표였다.
나를 비롯한 18명이 2006년 처음으로 혜택을 받았는데, 순수학문을 위한 박사과정 학생 뿐만 아니라 법대, 경영대, 의대, 공대, 미대 등의 대학원생들까지 섞여 있었다. 보조금을 주는 형식으로 모든 학생들이 한 건물에 모여서 살도록 유도했는데, 서로간에 보다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었다. 거기에 두세 달에 한번 꼴로 존 맥도넬이 직접 다양한 활동을 같이 했다. 음악회, 미술전, 연극 관람, 농장체험, 해비타트 봉사, 뉴욕-워싱턴-시카고 방문, 국제 환경 학술대회 개최 등 다양했다. 존 맥도넬은 나에게 단순히 장학금을 주었다기 보다는 새로운 기회와 경험을 통째로 안겨다 주었던 셈이다.
그는 더 나아갔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에 기부하도록 설득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총 17개 기업, 3개의 장학재단, 4명의 개인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맥도넬 아카데미를 크게 확장했다. 아시아뿐만 아니라 중동, 동유럽, 남미, 호주 등 총 15개국 32개 대학교와 파트너십을 맺어 98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80명의 학생이 현재 재학 중이다. 한국에서는 휠라코리아(대표 윤윤수)와 미래에셋(대표 박현주)이 매년 기부금을 내고 있고, 총 9명의 졸업생과 7명의 재학생이 한국 출신이다.
맥도넬 아카데미 이외에도 워싱턴 대학교와 많은 일을 같이 했다. 순수학문을 장려하기 위한 펀드, 석좌교수 펀드, 장학금 펀드 등 총 1억 달러(1,080억원) 이상을 기부했다. 이사회 이사로 참여했고, 마크 라이튼(Mark Wrighton) 총장의 기부금 모금 캠페인을 진두 지휘했으며, 수많은 대학교 행사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대학교 밖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세인트루이스 과학관, 댄포스 식물관, 반즈-주이쉬 종합병원 등에 자신의 시간과 돈을 기부했다. 2008년에는 세인트루이스 포스트-디스패치 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시민상”을 받았으며, 2017년에는 재인-휘트니 해리스 재단으로부터 “세인트루이스 봉사상”을 받았다.
올해로 나이 80이 된 존 맥도넬은 아직도 멈추지 않는다. 지난달 안부인사 이메일을 보냈더니, 중국 베이징에서 대학, 도시, 국가들의 교류협력을 위한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는 답장을 받았다. 외국은 적당히 다니면서 건강도 챙기시라는 나의 말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자신이 항상 민족주의자(nationalist)가 아니라 글로벌리스트(globalist)가 되려고 노력한다. 미국의 강점은 다른 나라의 사람과 문화를 반기는 것에 있다. 그들을 교육하고 그들에게서 배우는 것이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나는 이를 위해서 쓰는 돈과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박홍민 (미국 위스콘신-밀워키 주립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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