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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수 前 부회장 만난 적 없다”
檢 김백준 진술 내용 설명에 반박
“몰랐던 사실 알았네…” 비꼬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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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62일 만에 모습 드러내
법무부 지침 개정으로 수갑 안 차
이재오 등 측근 방청… 150석 만원
“정치를 시작하면서 권력이 기업에 돈을 요구해선 안 된다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결코 부정한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23일 ‘수인번호 716번’을 달고 서울중앙지법 제417호 대법정에 피고인으로 출석했다. 3월22일 구속된 이후 62일만에 외부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여전히 부정한 일을 하지 않았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정계선) 심리로 열린 자신의 재판에 수의 대신 검정색 정장을 입고 등장했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달리 이 전 대통령은 수갑이나 포승줄 없이 법정에 왔다. 65세 이상 고령자에 대해서는 수갑 등을 채우지 않아도 된다는 지난 4월 법무부 개정 지침 덕분이다.
약 두 달 전 검찰에 소환됐을 때보다 다소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항상 말끔하게 정돈돼 있던 그의 머리는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 다소 부스스했고, 법정에 들어와 피고인석으로 이동할 때는 법원 경위 부축을 받았다. 거동이 다소 어려웠음에도 그는 한 손에 직접 쓴 입장문이 담긴 서류봉투를 꼭 움켜쥐고 있었다.
오후 2시, 전두환ㆍ노태우ㆍ박근혜에 이어 전직 대통령으로는 네 번째로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그는 재판장이 신원 확인을 위해 직업을 묻자 힘 없는 목소리로 “무직”이라 답했다. 그러나 이내 110억원대 뇌물수수와 350억원대 다스(자동차 부품회사) 횡령 등 혐의에 대한 검찰 측의 공소요지를 반박하며 자신의 입장을 밝힐 때는, 큰 목소리로 당당하게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및 대통령 시절에 있었던 대규모 사업인) 청계천 복원, 4대강 사업, 제2롯데월드 건설 등이 모두 시끄러웠고, 때문에 퇴임 이후 감사도 받고 검찰 수사도 받았지만 불법자금은 나오지 않았다”라며 “검찰이 무리한 기소를 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중간중간 목을 가다듬거나 기침을 내뱉기도 했지만, 준비해온 입장문을 12분간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읽었다.
검찰 측이 공소사실을 설명한 뒤엔 언성을 높이며 자신을 조사하고 기소한 검사들을 노려보기도 했다.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청와대 본관에서 이학수 전 삼성전자 부회장을 이 전 대통령에게 소개시켜줬다”는 부분과 관련해선 이 전 대통령은 갑자기 “뭣 때문에 검찰이 이렇게 억지로 나를 엮는지 모르겠다, 청와대 본관에는 내 임기 5년간 기업인이 들어온 적이 없다”고 언성을 높였다. 재판장이 “구체적인 것은 나중에”라며 만류했지만, 그는 말을 듣지 않고 “내가 이 전 부회장 안 만난 건 검찰도 잘 알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이날 재판이 진행된 417호 총 150석의 방청석이 만원을 이뤘다. 이 전 대통령의 세 딸을 비롯해 친ㆍ인척은 물론이고, 이재오 자유한국당 상임고문, 하금렬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측근들도 방청석 앞 쪽에 자리했다. 일반 시민에게 배정된 68석도 가득 찼다. 뒤늦게 도착해 방청권을 받지 못한 이들이 법정 출입구에서 “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느냐”며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이날 재판은 이 전 대통령 건강상태를 고려해 1시간마다 10분씩 휴정했다. 이 전 대통령은 첫 번째 휴정 때 쉬러 들어가며 측근들에게 눈짓으로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5시간 동안 진행된 재판을 마치고 나가면서는 측근들에게 “오늘 나도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았네”라고 검찰 측 공소사실을 비꼬며 수고했다는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일반인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본 대학생 A(23)씨는 “재판을 보니 뉴스로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범죄 사실이 있어 놀랍다”고 했고, 한나라당 당원이었다던 B(71)씨도 “한 때 이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으로서 정말 크게 실망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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