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정체성과 미국 사회 탐색
노벨상만 빼고 모든 상 휩쓸어
/22일 타계한 미국 소설가 필립 로스. 뉴욕 AP=연합뉴스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 필립 로스가 22일 타계했다. 향년 85세. 사인은 울혈성심부전으로,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부고 기사 제목과 첫 문장에 ‘우뚝 솟은’ ‘발군의’ ‘다작의’ ‘변화무쌍한’ ‘종종 블랙 유머를 구사한’이라는 다양한 표현을 써 로스의 삶을 요약했다. 로스의 작가 인생은 그 만큼 화려했다. 로스가 받은 문학상 목록이 증거다. 데뷔 소설인 ‘굿바이, 콜럼버스’(1959)로 전미도서상을 탄 것을 시작으로, 전미도서상 두 번, 전미비평가협회상 두 번, 펜/포크너상 세 번에 퓰리처상, 미국 문학예술아카데미가 주는 최고 권위 상인 골드메달, 펜/나보코프상, 펜/솔벨로상, 맨부커 인터내셔날상, 미국 국가예술훈장 등을 휩쓸었다. 미국 문학 고전을 펴내는 비영리 출판사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에서 미국 생존 작가 중 처음으로 로스의 9권짜리 완전 결정판을 펴낸 것도 그가 남긴 기록이다. 노벨문학상과는 유독 인연이 없었다. 거의 매년 유력 후보로 거론됐지만, 끝내 받지 못했다.
로스는 폴란드 유대계 이민 2세다. 자전적 소설에서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끈질기게 탐색했다. 유대인 문제에 머물지 않고 미국 사회와 시대의 문제를 조망해 ‘미국 대표 작가’로 올라섰다. 로스의 책 약 10권을 번역한 정영목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는 저서 ‘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에서 “로스는 유대인이라는 동굴로 들어가 갈 수 있는 데까지 깊이 파고든 끝에 온 인류의 땅으로 나왔다”고 썼다. 유대인 남성의 괴이한 성경험을 다룬 문제작 ‘포트노이의 불평’(1969)으로 이름을 얻은 로스는 후기작으로 갈수록 진보한다는 평을 들었다. 정력적 작가였지만, 흥분하지 않고 절제하는 글을 썼다.
로스는 2012년 프랑스의 작은 잡지와 인터뷰에서 “내가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했다”며 절필을 선언했다. ‘네메시스’(2010)가 그가 낸 마지막 소설이다. ‘미국의 목가’(1997),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1998), ‘휴먼 스테인’(2000), ‘죽어가는 짐승’(2001), ‘에브리맨’(2006), ‘울분’(2008)을 비롯한 장편소설, 단편집 등 30여권을 남겼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