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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자본 사냥터 된 한국…무방비 상태로 당하는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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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자본 사냥터 된 한국…무방비 상태로 당하는 기업들

입력
2018.05.23 04:4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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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삼성전자 액면분할 이어

현대모비스 분할ㆍ합병 무산시켜

행동주의 펀드, 한국 기업 겨냥

취약한 지배구조 등 집중 공략

성장 잠재력 등 장기 관점보다

배당 등 단기 성과 극대화 전략

“차등의결권ㆍ포이즌필 도입해야”

우리나라가 투기자본의 놀이터로 전락하고 있다. 주주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은 삼성전자 액면분할 요구를 관철시킨 데 이어 현대모비스 분할ㆍ합병안까지 무산시키면서 한국 대기업을 차례차례 사냥하고 있다. 더구나 아시아 기업을 겨냥한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이 급증하고 있는데도 우리나라에는 이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전무한 상태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주주 및 시장과 소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최근 JP모건이 발간한 ‘아시아의 주주행동주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행동주의펀드 활동 건수는 2011년 351건에서 2017년 662건으로 늘어났다. 특히 같은 기간 아시아 지역의 행동주의 펀드 경영 간섭 사례는 10건에서 106건으로 급증했다. 유독 아시아 지역이 투기 자본의 집중 타깃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같은 기간 아시아에서 발생한 공격 사례 총 376건 중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게 24건이나 됐다.

한국 등 아시아 기업이 행동주의 펀드의 주요 먹잇감이 되고 있는 것은 순환출자와 정부의 과도한 간섭, 족벌경영 등 복잡하고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우리나라 주요 기업들은 압축 성장 과정에서 자본금 확충 방법으로 주식을 대거 발행, 대주주 지분이 5% 안팎으로 매우 낮은 상태다. 이런 취약한 지분 구조가 기업 승계 및 상속과 맞물려 투기 자본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들은 기업 승계를 위한 인수합병(M&A) 과정에서 반대표를 던지거나 보유 지분을 활용해 이사회에 진출한 뒤 자산 재분배, 기업 전략 수정 등을 요구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문제는 이런 행동주의 펀드들이 주주가치환원이란 긍정적 역할을 하는 측면도 없지 않지만 본질적으로는 단기 성과에만 집착하는 ‘투기자본’의 성격이 강하다는 데에 있다. 이들은 내부유보율이 높은 기업의 지분을 사들인 뒤 자산 매각을 요구하고 이 과정에서 주가가 상승하면 보유 지분을 매각해 차익을 챙겨 빠져 나간다.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과 근본적인 경쟁력을 키우는 데 주력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선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은 백해무익일 수 밖에 없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행동주의 펀드는 주로 자사주 매입, 배당 등 주식 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단기적 성과만 극대화하려고 한다”며 “기업 경쟁력 강화 등 장기적 성장엔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현대모비스 분할ㆍ합병안처럼 공정거래위원회도 동의한 사안이 무산된 것은 결국 정부 정책까지 투기 자본의 힘에 의해 좌절된 것이란 평가도 없잖다.

이에 따라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방어할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종전에는 순환출자를 통해 소수 지분으로도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었지만 정부 정책으로 지배구조가 점점 단순해지는 현 시점에선 기업들이 무방비 상태다. 상장사 대표 단체인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가 최근 차등의결권 주식과 포이즌 필 등 경영권 방어 수단 도입 법제화를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차등의결권은 1주1의결권에서 탈피, 창업자나 최대주주 등에게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주식을 별도로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포이즌 필은 기업이 적대적 M&A 위협에 처했을 때 기존 주주들이 시가보다 싼 값에 지분을 사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방어수단이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독일이나 일본, 프랑스 등 선진국은 경영 안정을 위해 포이즌 필이나 황금주 등 경영 안전 장치를 마련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맹목적인 반기업 정서 때문에 도입하기가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기업들도 시장과 더 긴밀하게 소통할 필요가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이번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개편안이 차질을 빚게 된 것은 경영진이 주주들을 설득하지 못한 잘못도 크다“고 지적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강아름 기자 sara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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