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 감자를 싫어했다. 잘 삶아진 감자의 포근포근한 질감도 싫었고 덜 익었을 때의 알싸한 맛도 싫었다. 특히 도시락 반찬 단골메뉴였던 감자볶음은 기분 나쁘기까지 했는데, 사실을 고백하자면 감자가 싫었던 것이 아니라, 시샘 많고 욕심 많은 둘째 아이가 부리는 옹졸한 투정에 가까웠다. 입이 짧은 오라비가 유독 감자만큼은 어떻게 요리해도 맛있게 먹었으므로, 내 어머니는 항상 볶은 감자나 조린 감자를 도시락 반찬으로 준비를 했고, 내 도시락 반찬도 덩달아 감자였으니, 나는 덤이고 깍두기냐고요, 어쩐지 서럽고 부당해서 생겨난 감정의 입맛. 네가 무슨 맛을 갖고 있든, 싫어할 테다 감자.
그래서 감자를 좋아하게 되기 위해서는 꽤 여러 절차가 필요했다.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독일 시골마을에서 지낼 때, 하루 세끼 그곳에서 해주는 밥을 먹어야 했는데, 매 끼니마다 온갖 방법으로 요리한 감자가 나왔다. 어쩔 수 없이 싫어하는 감자로 배를 채워야 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감자가 꽤나 괜찮은 맛이라는 건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바로 감자임을 알았을 때, 까짓 것 같이 좋아해주자, 감자 너, 참말로 맛있는 애로구나 인정. 그렇다. 나는 편협과 편파와 편애와 편중으로 기울어진 사람이다. 어쨌거나 나는 이제 감자튀김으로 해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전제는 그 위에 계란 반숙과 베이컨이나 하몽을 얹어 비벼 먹을 때 가능하다는 것. 스페인에서 종종 그렇게 먹었는데, 생각보다 괜찮다. 쓰린 속을 부드럽게 코팅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이때 감자튀김은 바삭바삭하게 아니라 촉촉하게 튀기는 것이 좋다. 튀긴다기보다는 기름에 삶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데, 끓는 기름에 감자를 넣어 튀기는 것이 아니라, 썬 생감자에 찬 기름을 가득 붓고 불을 올려 함께 끓이는 방법이다. 삶은 감자와 튀긴 감자의 중간쯤 맛이다. 이 방법으로 기름에 끓인 감자에 계란을 풀어 다시 도톰하게 빈대떡처럼 만들어낸 것이 또르띠야다. 스페인 대표음식 중의 하나로 그대로 먹기도 하고, 잘라 빵에 끼워 먹기도 한다. 시금치나 피망 같은 채소를 넣어 만든 또르띠야도 있지만, 또르띠야하면 당연히 감자, 감자와 계란의 조화가 아주 단단하고 고소하다. 그러고 보니 감자는 참으로 넉살이 좋고 친화력이 좋은 재료다. 고기 요리나 해물 요리에 곁들어지기에는 감자만한 게 없지. 감자와 삶은 문어와의 조화는 얼마나 기막힌가. 그 유명한 갈리시아식 삶은 문어는 그 둘을 결코 떼어낼 수 없는, 최강의 완벽한 투톱 공격을 자랑한다.
좀 난해한 감자 요리도 있는데,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먹는 가스파츄엘로(gaspachuelo)라는 요리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해물 감자 마요네즈국이라고 할까? 그 맛은 상상한 그대로다. 좀 시큼하고 좀 고소한 마요네즈 맛에, 새우나 대구 같은 깔끔한 해산물 맛, 그리고 포근포근한 감자분 느낌을 더한 맛. 어디에서도 못 본 그런 맛, 그런데 자꾸 떠올리게 되는 맛. 그곳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먹은 첫 번째 음식이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만으로도 침이 돌고 심장이 뛰는 첫 번째 감자요리이다.
그리고 도무지 사먹지 않고 못 버티게 만드는 감자가 있었으니, 어느 축제장에서 만난 생감자튀김이다. 장작 드럼통 위에 끓고 있는 커다란 기름솥, 수북이 쌓인 통감자와 잘리는 족족 끓는 기름 솥으로 떨어지는 감자 슬라이스. 기름 끓는 소리와 향긋한 튀김 냄새. 이것이야 말로 감자튀김의 정수. 축제가 벌어지는 맛과 소리. 역시 무언가를 즐기고 흥을 돋우는 데는 감자칩이 최고다.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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