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과 달리 창문 없는 밀폐구조
車 1000여대 한꺼번에 불타며
타이어ㆍ시트가 연기ㆍ열 내뿜어
소방력 총동원 불구 열기 안 식어
불 끄기→확산 막기로 방식 변경
완진 단계ㆍ잔불 제거 난항 계속
21일 발생한 인천항 화물선 화재 진압이 22일에도 밤새 이어졌지만 완전 진화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소방당국은 하루 이틀이 더 지나야 겨우 최종 진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22일 인천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번 화재는 21일 오전 9시39분쯤 인천 중구 항동7가 인천항 1부두에 정박 중인 파나마 국적 화물선 오토배너호(5만2,422톤)에서 발생했다. 당시 선박에는 수출용 중고차 2,400여대가 적재돼 있다.
이번 화물선 화재는 일반 건물에서 발생한 사례와 달리 부두에 정박된 밀폐된 공간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진화가 더디다는 게 소방당국의 설명이다. 창문과 출입문이 거의 없는 밀폐된 구조에다, 선박에 실려 있던 차량 1,460대가 한꺼번에 타면서 내뿜는 열과 연기로 배 내부가 ‘화덕’처럼 변해 초기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인천소방본부는 전날부터 열과 연기를 빼기 위해 10㎜ 두께 배 외벽을 11군데 뚫었으며 선수와 선미 쪽을 통해 소방대원들을 투입해 화재를 진압했다. 소방대원들은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화물선 11층 선수 부분까지 진입해 불을 껐다. 중부해양경찰청은 3,000톤 규모 경비함정 2척을 동원, 바닷물을 끌어올려 배에 뿌리면서 열기를 식혔다. 선박이 균형을 잃지 않도록 평형수 200톤을 공급하는 작업도 진행됐다.
소방당국은 화물선 전체 13층 가운데 8층에 방화선을 구축해 8층 이하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고 있다. 소방당국은 전날 선박 진입이 어렵다고 보고 매뉴얼에 따라 화재 진압 방식을 불을 끄는 것에서 불이 번지는 것을 막는 방향으로 바꿨다. 우선 불이 갑판과 8층 이하로 번지는 것을 막고 이후 불이 난 곳까지 진입, 진화작업을 벌였다.
22일 0시6분을 기해 큰 불길을 잡아 대응 2단계를 1단계로 낮췄고 0시47분에는 초진 단계로 들어갔다. 전날 배에서 뿜어져 나오던 검은 연기도 흰색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소방당국은 완진 단계 진입과 잔불 제거까지는 1, 2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소방당국은 밀폐되고 철판으로 만들어진 선박 구조, 빈틈없이 들어선 차량, 차량 연료와 고무 타이어, 시트가 타면서 발생하는 최소 500도의 열과 연기, 고온의 열로 물이 증발해 내부까지 닿지 않은 점 등을 화재 진압이 어려웠던 이유로 꼽았다.
해외 사례를 보면 지난 3월 6일 오만 남동 쪽 900마일 해상에서 항해를 하던 컨테이너 선박 ‘머스크 호남’은 화재가 발생해 완진이 되기까지 42일이 소요됐다.
국내 주요 선박은 화재 시 진입로를 파악하기 위한 선박 구조도가 있으나 이 배는 파나마 국적이라 구조도가 없었던 점도 영향을 미쳤다. 선박은 일반 건물과 달리 화재 진압 작전도도 따로 없다.
이번 화재는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향후 이에 대비한 체계적인 진화 작업과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화재 진압 여건이 어려울수록 체계가 잘 갖춰져 있어야 하는데, 부두나 항구에 정박한 배에서 발생하는 화재가 많지 않아 (진화작업) 경험이 부족한데다 매뉴얼이 되는 화재 진압 작전도도 없는 등 미흡한 게 현실”이라며 “소방과 해경이 통합훈련을 정기적으로 하는 등 긴밀한 협조체계가 갖춰져 있는지도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방본부는 11층에 있던 한 중고차에서 엔진 과열로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 원인과 피해 규모를 조사하고 있다. 차량 5,700대까지 실을 수 있는 이 배에는 화재 당시 중고차 2,438대가 실려 있었다. 이 중고차를 선적한 업체 일부는 화물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큰 재산 피해가 예상되고 있다.
소방본부 관계자는 “해경과의 합동감식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할 계획”이라며 “배 내부 깊숙한 곳까지 진입을 하지 못해 재산 피해액 산출도 시간이 걸릴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김청환 기자 ch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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