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네수엘라 대통령 선거
불공정 선거 반발 속 68% 득표
野 보이콧에 투표율 46% 그쳐
“완벽한 선거, 영웅적 승리” 자찬
美ㆍEUㆍ브라질 등은 “인정 못 해”

“완벽한 선거 과정이었다. 역사적인 날이고, 영웅적 승리의 날이다. 베네수엘라 전체가 승리했다. 민주주의와 평화와 헌법이 승리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대선 승리를 확정하자 마치 기대하지 않은 성과를 거둔 듯 자찬했지만, 가장 강력한 정권 비판자들조차 마두로 대통령 재선 이외의 결과를 기대하지 않았다. 마두로 대통령은 총득표수 약 582만표(득표율 약 68%)로 엔리 팔콘 전 라라주지사(182만표ㆍ약 21%)를 손쉽게 따돌리고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최대 야당 국민연합회의(MUD)가 선거를 보이콧한 가운데 진행된 이번 대선 투표율은 46%에 머물렀다. 2013년 80%에 이른 것에 비하면 투표율이 절반 가까이 폭락한 ‘반쪽 대선’에서 승리한 셈이다.
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야권은 이번 대선이 불공정 선거라며 반발했다. 팔콘 전 지사 측은 정부 직원들이 투표소 근처에 ‘레드 포인트 존’을 설치해 은근히 마두로 대통령을 투표하라는 선거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유권자들은 레드 포인트 존에서 국가에서 발급하는 ‘조국 카드’를 이용해 식료품 배급이나 현금 지급 등 각종 이득을 받고 투표소로 향했다.
이런 공작에도 투표율이 46%에 머무른 것은 2013년 마두로 집권 이래 오랜 경제난이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경기침체와 국제유가 급락에 베네수엘라 경제는 파탄이 났다. 최근 원유 가격이 다시 오르고 있지만, 정작 세계 주요 석유매장국가 중 하나인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은 미국 금융제재와 투자 부족 등으로 생산량이 떨어지고 있다. 석유 생산을 독점하는 국영 베네수엘라석유공사(PDVSA)는 채권자들의 압류에 시달리는 상태다. 미국 에너지정보기업 S&P글로벌플래츠는 베네수엘라의 석유 생산량이 5월 들어 하루 141만배럴로 30년래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고 추산했다.
이렇듯 경제적으로는 악재투성이인 마두로 정권이지만, 정치 권력만큼은 확실히 부여잡았다. 베네수엘라 야권은 2015년 총선을 앞두고 대규모 연대체인 MUD를 구성해 의회를 장악했지만, 마두로 대통령과 여당(연합사회당)은 사법부와 군부를 동원해 의회를 무력화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의회 해산 판결을 내렸고 그 자리는 친(親) 마두로 인사로 가득 찬 ‘제헌의회’가 차지했다.
의회 해산 직후 대규모 반정부 집회가 열리는 등 여론은 야권으로 흘렀지만, 정작 MUD의 투쟁은 지리멸렬했다. 이념과 관계 없이 선거 승리를 위해서만 뭉친 상황이라 응집력이 약했다. 친 마두로 제헌의회는 여당에 유리하도록 촌락 지역 대표자 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선거법을 개정했고, 2017년 지방선거에서는 연합사회당이 다시 압승했다.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위기에도 불구하고 마두로의 권력은 오히려 더 강해졌다”고 평가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2017년 8월 ‘리마 선언’으로 베네수엘라 위기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 브라질ㆍ아르헨티나ㆍ콜롬비아 등 미주 14개국은 선거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미국 재무부가 이미 수 차례에 걸쳐 마두로 정권 주요인사에 금융제재를 내린 가운데 국무부도 대선 당일 베네수엘라 원유 금수 조치를 적극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유가가 치솟는 상황에서 고유가에 부정적인 트럼프 정부가 무작정 원유 금수 카드를 꺼내기는 부담스럽다.
결국 베네수엘라 국내외 정치 구도상 마두로 대통령의 집권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북서부 도시 푼토 피호에 사는 유권자 라울 산체스는 “결과를 뻔히 아는데 투표에 의미가 있는가.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한탄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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