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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페어런츠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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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페어런츠 가이드

입력
2018.05.21 19: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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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영화 문화에서 가장 아쉬운 점 중 하나는 제대로 된 가이드의 부재다. 평론가들의 별점이나 네티즌 평점도 그다지 신뢰할 만한 수준은 아니고, 포털 사이트엔 홍보용 콘텐츠만 가득하다. SNS를 통한 입소문도 개인의 취향일 뿐 어떤 가이드라고 할 순 없다. 영화에 대한 모든 정보가 마케팅으로 수렴되는 상황에서, 어쩌면 객관적이며 실용적이고 믿을 만한 가이드라는 건 애초에 기대할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영화에 대한 ‘객관적이며 실용적이고 믿을 만한’ 정보는 분명 필요하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부모 입장에선 더욱 그렇다. 아이들에게 어떤 영화를 보여 줄 것인가? 혹시 선택한 영화에 유해 요소는 없을까? 미리 여러 영화들을 본 후 선택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부모가 평론가나 영화 저널 종사자가 아닌 이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여기서 ‘페어런츠 가이드(parents guide)’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페어런츠 가이드’는 말 그대로, 부모를 위한 영화 소개다. 한국에선 생소하지만 외국, 특히 미국에선 꽤 오래 전부터 있었던 영화 문화다. 한 편의 영화가 개봉되면 수십 개의 사이트가 ‘부모의 눈’으로 리뷰를 하고, 그렇게 쌓인 데이터베이스의 양은 대단하다. 가장 대표적인 페어런츠 가이드 중 하나인 ‘커먼 센스 미디어(common sense media)’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5월 현재 8,600편 이상의 가이드 정보가 있다.

‘페어런츠 가이드’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소극적으로 본다면 영화의 유해 요소에 대한 경고다. 영화의 폭력성과 잔인함, 알코올이나 마약, 성적인 요소, 자극적인 이미지, 거친 언어 사용 등 각 섹터를 나눠 그 수위에 따라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다. 단지 점수만 매기는 게 아니라, 그 디테일을 묘사하기도 하는데 ‘인터넷무비데이터베이스(www.imdb.com)’의 페어런츠 가이드를 보면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 대해, 짧은 키스 신이 몇 개 있고 액션 신은 시리즈 중 최고로 강렬하지만 피 튀기는 고어 신은 없으며 비속어 사용은 있지만 알코올이나 마약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정보를 준다. 이처럼 자세하진 않지만 한국에서도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총 7개 항목에 대해 유해 요소를 체크하고 있는데, 1부터 5까지 막대 그래프로 그 강도를 보여 주는 방식이다.

페어런츠 가이드의 또 다른 측면은 적극적 접근이다. 영화를 통해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테마를 제시하는 것이다. 커먼 센스 미디어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 대한 가이드에서 이 영화를 통해 팀워크, 용기, 희생 등의 테마를 토론할 수 있다며 구체적인 방향과 함께 제시한다. 영화가 꼭 교육이나 교훈을 위한 교재로 사용되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함께 영화를 본 가족이 모처럼 생긴 공동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을 때 이런 가이드는 꽤 유용하다.

21세기 한국영화 르네상스가 시작되면서 양적으론 크게 성장했을지 몰라도 질적 성장이 동반되진 않았으며, 질적 성장 부분은 등한시되어 왔다. 이제라도 이 부분을 고려해야 하며 페어런츠 가이드는 그 기본 중 하나일 것이다. 영화가 가족 문화로서 좀 더 밀접하게 자리 잡는 건, 긴 안목으로 볼 때 좋은 관객층을 두텁게 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상물등급위원회는 규제와 심의보다는 미래 지향적인 부분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며, 저널들도 이 부분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호소 하나. 아무리 영화 자체의 등급과 상관없이 예고편은 모두 전체 관람가 등급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아이들 보는 영화 시작하기 전에 제발 19금 영화 예고편은 틀지 말았으면 한다. 극장들이여, 장사도 좋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좀 지키자.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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