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냉전은 현재진행형
2016년 미국 대선 과정 '러 스캔들'
트럼프, 당선 이후 러 제재 완화 시도
모종의 거래 있었는지 의혹 여전
# 저서 '푸틴의 도둑정치'
빼돌린 당 자금으로 금융ㆍ기업 인수
KGB 시켜 세탁ㆍ은닉 저지른
푸틴 부패를 입체적으로 추적
# 클랩토크라시를 경고하다
러 부의 35% 가진 푸틴 일당
자산 백지신탁 거부하고
세금 공개 않는 트럼프에 빗대
2016년 미 대선 도널드 트럼프 진영의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해 온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 팀이 트럼프 변호인단에 보낸 서면 질의서가 최근 공개됐다. 49개 질의항목 중 13개가 러시아 관련 질문, 즉 선거기간 중 러시아 측과의 내통ㆍ협력과 트럼프의 개입 여부에 집중됐다. 모스크바 부동산 투자 등 사업과 우크라이나 사태-대러 제제를 두고 러시아와 ‘거래’한 혐의도 포함됐다. 대선에서 도움을 받는 대신 대러 경제제제를 완화하거나 해제해주기로 한 것 아니냐는 거였다.
민주당 열성 지지자인 뉴욕시립대 교수 폴 크루그먼이 트럼프 권력을 두고 ‘클랩토크라시(Kleptocracy, 도둑 정치)’라며 러시아의 푸틴 체제에 견준 건 미 대선 막바지인 2016년 말이었다. 크루그먼은 트럼프의 5,500억 달러 인프라 투자 공약은 공공부문을 민영화해 자신과 사업파트너들의 배를 불리려는 수작이라며, 푸틴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벌여온 행태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스캔들과 크루그먼의 경고 이면에는 일국의 악덕정치(Kakistocracy)를 넘어 ‘신냉전’이라 불리는 국제질서의 교란 즉 트럼프와 푸틴의 금권적 동맹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서려 있다. 실제로 트럼프는 취임 후, 의회의 반발로 실효를 거두진 못했지만, 여러 차례 대러 제재 완화를 시도했고 추가 제재를 저지하고자 했다. 저 혐의들이 불거지기 시작한 2017년 2월, 트럼프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자기는 푸틴을 존경하며 도덕적으로 미국과 러시아는 차이가 없다고 발언, 공화당 내에서도 반발을 샀다. 폭스뉴스의 빌 올라일리(Bill O’Reilly)가 “푸틴은 살인자 아니냐”고 다시 묻자 그는 “우리에게도 살인자는 많다. 미국이 그리 깨끗한 나라라고 생각하나?”라고 반문했다. 트럼프는 유력 대선후보로 거론되던 2015년 msnbc 좌담에서도 푸틴 정권의 저널리스트 살해를 유사한 논리로 긍정한 바 있었다.
대러 경제제재는 2014년 3월 러시아의 크림공화국 합병과 우크라이나 내전 개입에 대한 국제사회의 응징으로 시작됐다. 오바마는 행정명령을 통해 그 해 7월과 9월 금융과 에너지, 방위산업 관련 미국 내 러시아 법인의 자산을 동결하고, 유력 기업인, 관료 등의 비자 발급을 금했다. 미국과 EU는 러시아의 시리아 내전 개입과 미 대선 개입 등이 불거질 때마다 제재 대상을 넓히고 강도를 높여왔다. 지난 1월 미 재무부는 러시아 메드베데프 총리와 안드레이 바이노 대통령 행정실장, 대외정보국장, 연방보안국장 등을 포함한 고위관리와 국영기업인, 올리가르히 114명의 명단과 부패 연루 사실을 담은 ‘크렘린 보고서’를 공개했다. 물론 러시아도 유사한 조치로 반격했다. 지난 7일 네 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푸틴의 대선 슬로건은 ‘위대한 러시아’였다.
저 일련의 ‘신냉전’ 기류 속에서, 세계가 출간 전부터 뜨겁게 주목한 책이 있었다. 미국 정치학자 카렌 더위샤(Karen Dawisha)의 ‘푸틴의 도둑정치 Putin’s Kleptocracy: Who Owns Russia?’였다. 책의 요지는 명료했다. 푸틴과 그의 KGB 출신 ‘일당(cronies)’이 옐친 이후의 러시아를 계획적으로 훔쳤다는 거였다. “개혁ㆍ개방 이후 러시아의 초기 민주주의 실험이 불운과 대중들의 관성, 관료의 무능, 서방의 부실한 지원 탓에 파행을 겪게 됐다는 일반적인 분석과 달리, 내 결론은 푸틴과 그의 일당(close-knit cabal)이 처음부터 권위주의 체제를 추구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지향(direction)이 아니라 장식(decoration)이었다.”(nybooks.com) ‘처음’이란 동독 드레스덴 주재 KGB 장교로 베를린 장벽과 소비에트 체제가 무너지는 현장을 지켜봐야 했던 푸틴이 고향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스부르크)로 돌아와 당시 시장이던 소브차크 밑에서 해외 통상담당관으로, 또 부시장으로 권력에 진입하던 80년대 말 90년대 초를 뜻한다.
‘푸틴의 도둑정치’는 그가 어떻게 구소비에트의 막대한 당 자금을 해외로 빼돌렸다가 국내로 반입해 경제를 장악했는지, 어떤 수법으로 올리가르흐(러시아의 과두 금융ㆍ산업 재벌)들을 제압하고 측근들로 대체해왔는지, 러시아 마피아 등 범죄조직을 어떻게 통제하고 또 이용하며 돈의 파이프라인을 장악했는지, 그 돈을 어떻게 은닉하고 세탁하고 운용했으며 그 과정을 실행한 이들-대부분 KGB나 동독비밀경찰 슈타지 출신-은 누구누구인지 등, 한 마디로 푸틴의 ‘돈’을 추적한 책이었다. 책에 등장하는 측근 대부분이 지금 미국과 EU 비자를 못 받아 발이 묶인 이들이고, 관련 기업들이 금융거래가 끊기고 자산이 동결된 곳들이었다. 책이 출간된 것도 2014년 7월이었다.
푸틴(권력)의 부패 의혹은 90년대 중반부터 언론과 학자들의 글을 통해 산발적으로 폭로되곤 했다. 더위샤의 책이 차별적인 것은 그 단편적 사실들을 논리적이고도 입체적으로 직조, 거대하고 정교한 태피스트리를 짰다는 점이었다. 더위샤는 푸틴이 국내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전 러시아 현지 기사와 모스크바 특파원들의 글, 미 국무부 공식 자료와 관련자 회고록 증언 인터뷰 등 대부분 공개 자료를 분석, ‘클랩토크라시’라는 진단을 내렸다. “그들은 민주주의의 도정에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처음부터 그 길을 택한 적이 없었다.”(economist.com).
책은 출간 전부터 진통을 겪었다. 앞서 그의 책 7권을 도맡아 출판했던 케임브리지대 출판부는 500쪽 분량의 원고를 검토한 뒤 명예훼손 등 ‘법률적 리스크’를 들어 출간을 거절했다. 조직 범죄와 다를 바 없는 사례들이 누가 언제 어떻게 등 6하 원칙에 따라 담겨 있고 그들 대부분 살아있는 권력자여서 소송을 걸 경우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이유였다. 편집장 존 해슬럼(John Haslam)은 2014년 3월 더위샤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 결정은 당신 연구의 질이나 학자로서의 신뢰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전제한 뒤 고소인에게 우호적인 영국의 법 현실을 설명했다. “영국에서는 명예훼손 소송의 피고가 사안이 사실임을 입증해야 한다. 당신 책의 경우 문제될 만한 내용이 너무 많고, 사실의 입증 자체가 극도로 어렵다.(…) 푸틴 권력이 조직 범죄에 기반하고 있다는 책의 기본 전제를 감안할 때, 내용 일부 수정하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더위샤는 출판부 동의를 얻어 그 편지와 자신의 반박 서신을 ‘The Economist’에 기고했다. “바로 지난 주에 EU와 미국 정부가 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의 비자 발급을 중지시키고 그들의 자산을 동결했다. 왜 그들이 리스트에 오르게 됐는지 밝히기 위한 취재 등 다양한 일들이 동시에 진행 중이다. 그 해답을 담은 내 책을 외면하는 건(no fly zone for publishing the truth) 너무 딱하지 않은가? 그들 크렘린과 결탁한 올리가르히들은 내키는 대로 벨그레이비어(런던의 부촌)에 저택을 사고, 방사능 물질로 반체제 인사를 살해하고(…), 자녀들을 영국의 보딩스쿨에 감춰 두고 있는데 말이다.” 그는 금융ㆍ부동산 투자 등으로 푸틴 그룹이 영국에서 정치ㆍ경제적 영향력을 키워온 사실을 환기하며 “500년 전통에 연 매출 4억 달러에 달하는 캠브리지대학 출판부가 겁쟁이가 돼서 사전적 분서(pre-emptive Book-burning)에 동조”했다고 썼다. 그의 책은 미국 ‘시몬&슈스터(Simon & Schuster)’에서 출간돼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책은 80년대 말 연방이 와해되던 와중에 중앙당이 KGB 서방 지부를 시켜 40억 달러에 달하던 현금 자산을 스위스와 영국 등에 빼돌린 일부터, 91년 쿠데타 실패 이후 KGB가 그 돈을 세탁한 뒤 국내외 금융회사와 기업을 사들인 과정, 그 어두운 거래의 거점이던 당시 레닌그라드의 관료이자 전직 KGB인 푸틴이 91년 전 슈타시 동료 메티아스 바르니히(Metthias Warnig)를 끌어들여 드레스덴 은행의 첫 러시아 지점을 열게 한 일 등을 기록했다. 바르니히는 훗날 러시아 최대 은행인 뱅크 오브 러시아(BOR)의 은행장이 됐고, 석유재벌 마하일 코도르코프스키의 석유회사 ‘유코스(Yukos)’를 삼키고 러시아-독일 가스전 사업권을 획득했다. 당시 독일 수상 슈뢰더는 이후 BOR의 이사로 재직했다.(nybooks, 위 기사)
앞서 푸틴은 소비에트 해체 직후 레닌그라드의 식량난 해소를 위해 1억2,000만 달러 어치의 원자재를 수출해 식량 및 생필품을 수입하는 거래를 주도했다. 그는 모종의 ‘사기’로 원자재만 날렸고, 그 사안에 의혹을 제기했던 시의회 의원은 직후 정치무대에서 실종됐다. 500억 달러를 투자한 소치 올림픽에서 투자액의 절반 이상이 푸틴 일당의 주머니로 들어갔고, 푸틴의 유년 유도 친구에서 거물 기업인이 된 아카디 로텐버거(Arkady Rotenberg) 일가가 그 중 25억 달러를 챙겼다는 것도 더위샤는 썼다. 소브차크 시절 푸틴이 주도한 수십여 건의 계약에서 시 당국이 챙긴 커미션이 25~50%에 달했다는 내용은, 뉴욕타임스 특파원 출신인 스티븐 리 마이어스의 푸틴 평전 ‘뉴차르’(프리뷰)에도 나온다.
80년대 말 몇 달째 월급을 못 받아 생활고를 겪던 KGB 중령 푸틴은, 2000년 대통령에 취임할 무렵 순수한 개인 재산만 400억 달러(그의 추정)에 달하는 갑부(nyt, 2014.11.25)가 됐고, 그의 측근 100여 명은 러시아 전체 부의 35%를 차지했다. 더위샤는 클랩토크라시의 핵심 원리이자 푸틴체제의 성장 동력을 “리스크의 국유화와 이익의 사유화”라 정의했다.
그의 책은 현재진행형인 ‘신냉전’의 맥락 안에서 국제정치ㆍ경제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숱한 고유명사들의 레퍼런스이자로, 가디언에 따르면, 러시아 문제 탐사보도 기자들의 ‘바이블 같은 책’이 됐다.
물론 반박하는 이들도 있었다. 켄트대 정치학자 리처드 사쿼(Richard Sakwa)는 더위샤가 러시아 체제와 권력구조의 복잡성, 사회계약에 기반한 상반된 경향들을 단순화하거나 무시했고, 클랩토크라시가 정착된 시점과 구체적 형태에 대한 분석을 누락했다고 지적했다.(the-tls.co.uk) 더위샤는 강연 등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방어했다. “그들(푸틴 일당)은 지난해(2014)에만 1,500억 달러의 돈을 해외로 빼돌렸다. 왤까? 그래야만 장기적으로 안전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시민들의 사회계약을 긍정하는 정치이론을 신뢰하지 않는다.”
카렌 더위샤는 1949년 12월 2일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교사였고, 아버지는 재즈피아니스트였다. 그가 중등학교를 다니던 50~60년대는 매카시즘과 소련의 핵공격 공포로 비디오 안보교육과 방공호 대피훈련이 일상이던 때였다. 더위샤는 고교시절 러시아어를 선택해서 익혔고, 콜로라도대를 거쳐 영국 랭카스터대를 졸업했다. 런던정경대에서 소비에트 관련 논문으로 74년 박사학위를 땄고, 80년대 영국 하원과 미 국무부 외교안보 관련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85년 매릴랜드대 교수가 됐고, 2000년 남편(Adeed Dawisha, 이라크 전공 정치학자겸 교수)이 재직하던 오하이오주 옥스퍼드의 마이애미대로 옮겨, 동구ㆍ러시아 연구소인 해빅허스트센터(Havighurst Center)를 설립해 이끌어왔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 고위층의 부패에 초점을 맞춘 연구가 드문 까닭은 일단 그 주제로 책이나 논문을 내면 러시아 입국을 거부당하는 등 후속 연구에 제약이 큰 데다, 이란ㆍ시리아 문제나 IS사태 등과 관련해 러시아의 협력을 기대하는 서방 정책당국의 협조도 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nyt, 2018.4.17)
하지만 더위샤는 맥아더재단, 포드재단, 록펠러 재단 등 보수 재단의 펠로십 등 상대적으로 풍족한 지원을 받았다. 국무부 인맥의 자료 지원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2016년 폐암 진단을 받고 남편과 함께 대학에서 은퇴했고, 4월 11일 별세했다. 향년 68세.
‘클랩토크라시’라는 낱말은 트럼프 이후 미국 언론에도 심심찮게 등장하게 됐다. 2017년 워싱턴포스트는 ‘클랩토크라시에 대한 5가지 미신’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클랩토크라시가 아프리카나 중동, 아시아 일부 국가에나 어울린다는 미신을 반박한 글이었다. 매년 세계적으로 국내총생산의 약 5%에 해당되는 돈(1조~1조6,000억 달러)이 세탁되며, 그 중 적발되는 건 1/5에 불과하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추정. 2012년 기준 역외에 은닉된 개인 자산이 32조 달러에 달하며 그 중 상당액이 조세피난처로 악명 높은 케이먼군도나 영국령 버진아일랜드가 아니라 미국 델라웨어, 사우스다코다, 와이오밍처럼 돈의 출처를 묻지 않고 금융ㆍ부동산 거래가 가능한 지역에서 합법적으로 은닉ㆍ세탁되고 있다는 것. 한 마디로 미국이 국제 클랩토크라시의 금융ㆍ돈세탁 거점 중 하나이며, 미국의 시스템은 부정한 금융인 회계사 변호사 로비스트들에 대한 방어막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였다.
2015년 갤럽 조사에서 미국인 75%는 미국 정부 내 부패가 만연하다고 답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세금납부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자산 백지신탁(blind trust, 공직자가 재임 중 자산 운용 권한을 제3자에게 맡겨 공사적 이해에 얽히지 않도록 하는 제도)도 거부한 채, ‘고인 물을 빼자(Drain the Swamp’는 대선 슬로건으로 당선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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