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측 기자단 명단 사흘째 접수 거부
외신에는 방문 비용 1인당 1100만원 청구
남측 기자단 제외한 채 진행 가능성도
최희철 동남아行… 북미회담 준비하는 듯
북한이 ‘현재로선 남한ㆍ미국과 대화 의사가 없다’는 강경 메시지를 연일 발신하면서 23~25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의 정상 진행 여부에 국내외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다만 국제 사회와의 약속을 일방 파기할 경우 감수해야 할 부담이 상당한 데다, 대외적인 입장과 별개로 내부적으론 행사 준비 정황이 속속 나오고 있어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통일부 관계자는 20일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 취재를 위한 남측 기자단 명단을 사흘째 접수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16일 새벽 남북 고위급 회담을 당일 취소한 데 이어 “북미 정상회담에 응할지 재고려하겠다”(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남조선과 다시 마주 앉는 일은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라고 경고하며 행사 무산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다만 방북 취재진을 위한 시설 준비 정황이 속속 포착되고 있어 아직까진 행사가 예정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풍계리 핵실험장이 있는 길주와 원산을 잇는 철로를 보수하고 열차를 시범 운행하고 있는 모습이 위성 사진에 최근 포착됐다. 북한이 외부 기자단에게 제공키로 한 특별전용열차 운행을 위한 사전 작업인 것으로 보인다.
전망대 추정 물체도 포착됐다. 미국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는 19일(현지시간) “풍계리 핵실험장 주변을 촬영한 위성사진에서 서쪽 갱도 인근 언덕에 4줄에 걸쳐 목재 더미가 쌓여 있는 것 같다”며 “기자들이 갱도 폭파 장면을 안전하게 지켜볼 수 있는 전망대를 준비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선전매체를 동원해 핵실험장 폐기 의의를 재확인한 것도 진행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조선의 오늘’은 이날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우리 공화국이 주동적으로 취하고 있는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20일 현재 북한 매체에서 행사 취소나 변경 관련 보도는 나오지 않았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가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을 가늠하는 시험대로 인식돼와 일방적으로 연기, 취소할 경우 향후 미국과의 협상에 파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북한이 예정대로 행사를 진행할 것이란 관측에 힘을 더한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판을 깰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만큼 늦어도 북미 정상회담 전까진 행사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다만 남북 간 냉기류를 반영, 남측 취재진을 제외하고 행사를 진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긴급하게 수용하면 갈 수 있지만 끝내 수용하지 않으면 못 갈 가능성도 있다”며 “내일(21일) 오전까지는 북측 반응을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단은 우선 21일 중국 베이징으로 출국, 북한 답변을 기다릴 예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북측이 외신에는 풍계리 방문 비용으로 1인당 1만 달러(약 1,100만원)를 청구했다고 알고 있으나, 남측 언론사에는 아직 비용 관련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취소 가능성을 거론하긴 했지만, 북미 정상회담도 계속 준비 중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19일 “최희철 외무성 부상을 단장으로 하는 조선 외무성 대표단이 일부 동남아시아 나라들을 방문하기 위해 이날 평양을 출발했다”고 짤막하게 전했다. 목적지나 방문 사유를 밝히진 않았으나 북미 정상회담 예정지인 싱가포르에 들러 회담 관련 논의를 할 가능성이 높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정지용 기자 cdrag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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