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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금성을 ‘글로벌 LG’로 키워 낸 구본무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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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금성을 ‘글로벌 LG’로 키워 낸 구본무 회장

입력
2018.05.2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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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 LIG, LF 등 계열분리하고도

매출 30조→160조로 5배 늘려

20일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사진은 2011년 11월 구 회장(가운데)이 LG화학 유리기판공장에서 생산제품을 점검하는 모습. LG 제공
20일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사진은 2011년 11월 구 회장(가운데)이 LG화학 유리기판공장에서 생산제품을 점검하는 모습. LG 제공

20일 별세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그룹 총수를 23년 간 맡으며 LG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낸 인물이다.

1945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난 구 회장은 연세대 재학 중 미국으로 유학해 애쉬랜드 대학과 클리블랜드 주립대 대학원에서 각각 경영학을 전공한 뒤 귀국해 1975년 ㈜럭키에 입사하는 것으로 기업 활동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과장, 부장, 이사, 상무, 부사장 등의 직위를 차례로 거쳤고 럭키와 금성사의 각종 부서를 돌면서 다양한 실무 경력을 쌓았다.

구 회장은 회사생활을 시작한지 20년만인 1995년에 고(故) 구인회 전 회장과 부친 구자경 명예회장에 이어 LG그룹의 ‘3세대 총수직’에 올랐다. 부친인 구자경 회장보다 5년 늦은 50세에 그룹 경영을 맡았지만 전 회장이 건강한 상태에서 승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는 것이 당시 재계의 평가였다.

고인은 다양한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그룹 핵심 사업인 전기ㆍ전자와 화학 사업은 물론, 통신 서비스, 자동차부품, 디스플레이, 에너지, 바이오 등 신성장 사업 분야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거듭했다.

구 회장이 가장 강조했던 경영 이념은 정도 경영, 가치창조형 일등주의, 도전주의와 시장선도 등이다. 무엇보다 ‘기술개발력 제고’ ‘세계화 추진’ 등을 주도했는데, 그가 그룹 기술자문위원회와 해외사업추진위원회 등의 위원장 자격을 수행한 것도 그 연장선상이다. 평소 “글로벌 경영에서는 초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 “신규 사업은 시작하면 반드시 1등을 해야 한다”고 강조해 모든 분야에서 ‘최고’를 추구한다는 면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과 닮았다는 평가도 받았다.

GS, LG, LIG, LF 등을 계열 분리하고도 매출은 30조원대(1994년 말)에서 지난해 160조원대로 5배 이상, 해외 매출은 약 10조원에서 약 110조원으로 10배 이상 신장시키는 등 엄청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LG디스플레이의 대형 올레드(OLED) 시장 선점, LG화학의 이차전지 사업 글로벌 1위 달성, LG유플러스의 LTE 시대 선공적 안착 등도 끈기와 결단으로 다져진 고인의 리더십으로 인한 성과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LG 관계자는 “고인이 LTE에 대비해 과감히 투자하라고 내린 지시는 시장을 내다보는 안목이었다”며 “2011년 17%대였던 LG유플러스 점유율을 20%대까지 끌어올릴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럭키금성에서 ‘LG’로 CI를 변경하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등 기업문화를 과감하게 바꿔 놓은 것도 고인의 역할이 컸다. 최근에는 서울 강서구 마곡산업단지에서 4조원을 투자해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인 ‘LG사이언스파크’를 건립하며 LG의 미래를 이끌어 갈 첨단 연구개발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고인은 야구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LG트윈스 구단주로 활동하면서 자율경영을 구단 운영에 접목해 ‘깨끗한 야구, 이기는 야구’를 표방, 창단 첫해인 1990년 시리즈에서 예상을 뒤엎고 우승하는 신화를 이뤄냈다.

여가시간에는 낚시와 골프를 즐겼다. 집무실에 망원경을 둘 정도로 한강에 몰리는 철새 떼 관찰하는 걸 즐겼다고도 한다. 시간관념을 중요시해 약속 시간을 반드시 지키고 대화할 때 본인의 이야기보다는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인물이라고 지인들은 그를 기억했다.

슬하에 아들과 딸 둘을 뒀으나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뒤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외아들 구광모 LG전자 B2B사업본부 정보디스플레이(ID) 사업부장을 2004년 양자로 입적해 경영수업을 받도록 했다.

김현우 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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