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범죄사실 소명 부족”
경찰 재수사 한계 부딪혀
2009년 제주에서 발생한 보육교사 살인사건 피의자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법원은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등 범죄사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9년 만에 과학수사 기법을 총동원해 재수사에 착수했지만, 또다시 한계에 부딪히면서 체면을 구기게 됐다.
제주지법 양태경 부장판사는 2009년 2월 1일 오전 3시에서 오전 4시5분 사이 A(당시 27세ㆍ여)씨를 자신이 운전하던 택시에 태우고 가던 중 성폭행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뒤 살해한 혐의(강간살인)로 체포된 박모(49)씨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고 19일 밝혔다.
양 부장판사는 “피해 여성 A씨가 당일 피의자의 운행 택시에 탑승한 사실 등 범죄사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며 “현 단계에서 피의자를 구속해야 할 사유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양 부장판사는 또 “A씨의 사망 시점이 실종 당일은 2월 1일이라는 경찰의 최근 감정 결과가 전혀 새로운 증거로 평가하기 어렵고 범행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로 보기도 어렵다”며 “경찰이 제시한 사건 발생 당시 폐쇄회로(CC) TV 차량 영상도 피의자가 운행한 택시와 동일한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찰이 새롭게 제시했던 미세 섬유(실오라기)도 유력한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다.
양 부장판사는 “피의자 차량에서 발견됐다는 옷 실오라기(섬유증거)도 피해자가 입었던 것과 단지 유사하다는 의미에 그칠뿐더러 유전자 등 직접적인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며 “또한 수사과정에서 피의자 택시 외의 다른 용의차량에서도 피해자가 입었던 무스탕의 동물털과 유사한 섬유가 발견됐었다”고 지적했다.
앞서 박씨는 2009년 사건 발생 2개월 후 유력한 용의자로 경찰 수사를 받았지만 증거 부족으로 풀려났고, 9년 만에 이뤄진 재조사에서도 관련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경찰은 동물부패실험 등을 통해 사건 발생 당시 부검의가 제시했던 A씨의 사망 추정 시간과 다른 결과를 제시하면서, 박씨가 A씨와 같이 있었을 가능성이 커 지난 16일 피의자로 체포하고 다음날인 17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이번 영장실질심사에서 경찰이 제시한 대부분의 증거가 법원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아 앞으로의 수사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경찰 관계자는 “9년 전 발생한 미제사건에 대해 과학수사 기법을 동원해 재수사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기존 증거를 재분석해 추가 증거를 수집했다”며 “구속영장 기각이 사건의 종결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관련 증거를 보강해 사건 해결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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