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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의 펭귄뉴스] 온난화로 몸무게 줄고 부리 짧아진 붉은가슴도요새

입력
2018.05.18 16:0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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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에서 갓 부화한 붉은가슴도요 새끼. 극지연구소 제공
알에서 갓 부화한 붉은가슴도요 새끼. 극지연구소 제공

눈 녹는 시기 앞당겨지면서

먹잇감 곤충들도 일찍 활동

새끼 성장기엔 곤충 수 줄어들어

부리 짧아져 조개도 못 파먹어

러시아 타이미르 반도는 위도 78도에 이르는 고위도 북극 땅이다. 1년 내내 거의 눈으로 덮여 있지만, 짧은 여름이 오면 동토가 녹아 식물이 싹트고 곤충이 쏟아져 나온다. 때를 맞추어 날아온 철새들은 곤충을 잡아 새끼를 키우고, 여름이 지날 때 다시 남쪽으로 이동해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다시 북극을 찾는다. 매년 반복되는 북극 생태계의 순환에 따라 철새들의 일정이 짜여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타이미르 반도의 여름이 앞당겨지고 있다. 네덜란드 반 길스 박사 연구에 따르면, 여름철 눈 녹는 시기가 1983년부터 2015년까지 33년간 약 15일 빨라졌다. 이른 시기에 눈이 녹으면 그만큼 곤충이 알에서 깨어나는 시기도 당겨진다. 하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이동 시기를 맞춰온 철새 입장에선 불과 30년 만에 일어난 변화가 너무 빠르다. 새끼에게 먹이를 줘야 하는 성장기엔 곤충들이 많이 나오는 시기가 이미 지났고, 어린 새들은 제대로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했다.

붉은가슴도요의 알. 극지연구소 제공
붉은가슴도요의 알. 극지연구소 제공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인 폴란드 그단스크 만에서 포획된 붉은가슴도요(Red Knot) 1,990마리의 신체정보를 모아본 결과, 눈 녹는 시기가 당겨질수록 새끼들의 무게가 줄어드는 경향이 확인됐다. 1984년엔 평균 125g이었던 것이 2014년엔 90g 정도로 줄어든 것이다. 부리 길이도 변화했다. 1983년 34㎜였던 부리길이가 2014년엔 32㎜ 이하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체형의 변화는 취식행동에 문제를 일으켰다. 해안가에 파묻힌 조개류를 먹는 녀석들이 조개는 먹지 못하고 대신 해초를 뜯어 먹게 된 것이다. 부리 길이가 문제였다. 주요 먹이인 조개류가 모래에 묻혀 있는 곳은 보통 3~4㎝ 깊이라서 부리의 미묘한 차이가 먹이에 닿을 수 있는 거리를 결정한다. 실제로 부리 길이는 어린 새들의 연간 생존율과 큰 관련이 있었다. 2002년부터 2013년까지 2381마리의 개체에서 부리가 4㎝인 녀석들은 다음에 해도 살아있을 확률이 70% 정도였지만, 3㎝부리의 새들은 40% 이하로 떨어졌다. 지구온난화가 북극 철새의 생존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밝혀진 셈이다.

지난해 북그린란드에서 관찰한 붉은가슴고요. 극지연구소 제공
지난해 북그린란드에서 관찰한 붉은가슴고요. 극지연구소 제공

필자는 지난 2년 간 그린란드에서 직접 붉은가슴도요의 번식 과정을 관찰했다. 예전의 자료가 없어서 직접적인 비교는 힘들지만, 먹이를 찾는데 꽤나 애를 먹는 모습이었고 새끼의 생존율도 낮아 보였다. 최근 그린란드 역시 최근 급격히 기온이 상승하였으며, 해빙이 녹은 범위는 매년 관측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2016년 북그린란드의 눈이 녹은 때는 대략 6월 17일쯤이었는데, 러시아 타이미르 반도와 비슷한 시기인 것으로 미뤄볼 때 전체적으로 북극권의 여름이 빨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린란드에서의 조사를 마치고 한국으로 떠나오던 날, 붉은가슴도요가 번식을 마치고 떼를 지어 이동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아마 남쪽으로 날아갈 채비를 했던 모양이다. 지난해 태어난 새끼들은 지금도 잘 살아 있을까? 부리를 쭉 뻗어서 조개를 많이 잡았으면. 힘내라 얘들아.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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