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한미 연합공중훈련과 백악관 강경파의 일방적 핵 포기 강요에 반발해 강경 모드로 급선회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른바 '리비아 모델' 배제와 김정은 체제 보장을 공언해 주목된다.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의 무산 가능성까지 경고하며 존 볼튼 안보보좌관 등의 '선 핵포기' 주장을 반박했던 점에 비춰 보면 큰 뇌관을 하나 제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주 초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어 미국과 북한 사이의 비핵화 이견을 해소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도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CVID 방식’의 비핵화 원칙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또 북미 정상회담이 무산되거나 합의가 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것이라고 말해 군사옵션을 포함한 최대의 압박 카드도 여전히 살아 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북한이 그동안 카다피 제거로 끝난 '리비아 모델'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온 만큼, 트럼프의 언급은 애써 만든 협상 불씨를 꺼뜨리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로 해석된다. 또 한미 연합훈련과 태영호 전 북한 공사의 발언을 판문점 선언을 부정하는 '엄중한 사태'로 규정해 남북대화 중단까지 위협하는 북한과의 긴장을 완화하는 계기도 될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엊그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과 만난 자리에서 "리비아 모델은 우리가 북한에 대해 생각하는 모델이 전혀 아니다"며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결단을 내리면) 매우 강력한 보호를 받고 나라를 계속 운영할 것이며 그의 나라는 매우 부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남한 모델'을 언급하며 경제적 번영을 지원할 것이라고도 했다. 반면 "우리가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카다피를 제거한) 그 모델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북한 중앙통신과 김계관 외무부 부상의 담화가 나온 지 이틀 만에 내놓은 발언이니 사실상 '트럼프 구상'인 셈이다.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 프로세스를 놓고 기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터져 나온 파열음은 트럼프 대통령의 '큰 당근과 큰 채찍' 공언으로 잦아들 전망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 입장은 다분히 곤혹스럽다. 고위급 회담을 거부한 북한이 이선권 조평통위원장을 앞세워 청와대 국정원 국방부 통일부 등 관계부처를 거명하며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을 비방 중상하는 놀음을 버젓이 벌린 남한과 다시 마주 앉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불신과 불만을 토해서다. 지렛대를 잃은 정부는 상황을 지켜보며 각급 라인을 통해 북한의 진의를 파악하겠다는 태세다. 그러나 오해를 푸는 데는 정상 간 핫라인만한 게 없다. 자꾸 두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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