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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혁신성장 구호만... 정부의 ‘반쪽 반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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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혁신성장 구호만... 정부의 ‘반쪽 반성문’

입력
2018.05.18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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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혁신ㆍ구조개혁 미진” 진단에도

향후 구체적 정책 추진 계획 없어

“신설 법인 10만개 육박” 성과 자평

중국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 그쳐

해외 유학시절 시중은행 외화송금의 ‘비싼 수수료, 거북이 송금’에 불만이 많았던 서일석(35)씨는 2016년 3월 외화송금 스타트업 ‘모인’을 세웠다. 시중은행이 해외송금 시 3개 이상의 국제 중개 은행을 거치며 송금 시간과 비용이 불어나는 문제를 블록체인 기술로 해결한 뒤 PC나 모바일을 통해 최초 1회만 본인 인증을 하면 이후 쉽게 돈을 보낼 수 있는 간편 시스템을 구축했다. 창업 4개월 만에 기관들이 7억원을 투자할 정도로 시장의 평가도 좋았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외국환거래법 개정에 따라 라이선스 취득요건(자기자본 20억원 등)과 금융기관에 적용되는 보안ㆍ전산설비, 인력요건 등을 충족하는 과정에서 무려 8개월이나 영업이 중단됐다. 이후에도 각종 규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규정 상 소액 해외송금 업체의 송금한도는 1인당 연간 2만 달러에 불과하다. 해외 유학생은 통상 1년에 학비와 생활비를 합쳐 2만 달러를 훌쩍 넘는 금액을 받기 마련이다. 시중은행에선 증빙 시 10만 달러까지 가능하다. 서 대표는 “많은 걸 지원해 달라는 게 아니다”며 “그저 공정한 게임의 룰을 적용받고 싶을 뿐”이라고 토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후 서울 강서구 마곡 R&D 단지에서 열린 혁신성장 보고대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고영권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후 서울 강서구 마곡 R&D 단지에서 열린 혁신성장 보고대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고영권기자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이 구호에 그치고 있다. 정부 스스로 지난 1년간의 혁신성장 추진 성과에 대해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규제 혁신과 근본적인 구조 개혁이 부족했다”고 진단할 정도다. 더구나 향후 규제개혁이나 노동개혁 정책추진 계획 등도 여전히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어 ‘반쪽’ 반성이란 지적이 나온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7일 서울 마곡 연구개발(R&D) 단지에서 열린 ‘2018년 대한민국 혁신성장 보고대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혁신성장 성과와 향후 추진계획 등을 보고했다. 이번 보고대회는 지난해 11월 혁신성장전략회의에서 채택한 혁신성장 8대 핵심과제(초연결지능화 스마트공장 스마트팜 핀테크 에너지신산업 스마트시티 드론 미래차)의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그 성과와 한계를 공유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우선 정부는 혁신성장 정책 추진 결과, 창업 붐 등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났다고 자평했다. 실제로 지난해 신설법인은 9만8,330개로 10만개에 육박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작년 신규 벤처투자 금액도 2조3,803억원으로, 역시 가장 높았다. 정부는 금융당국의 신속한 유권해석을 통해 중소 자영업자 등이 카드 단말기 없이 스마트폰을 통해 카드 결제를 받을 수 있는 앱(응용프로그램) ‘페이콕 체크’ 같은 신(新)서비스가 탄생한 사례도 소개했다. 한훈 기재부 혁신성장정책관은 “신설법인 수 증가는 장래 일자리 창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우리나라의 1만명 당 신설 기업 수는 15개로, 중국(32)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지난 2012년에는 한국(15개)이 중국(14)보다 많았다.

지난 1년 간 혁신성장 정책 추진의 성과라고 딱히 내세울만한 것도 찾기 힘들다. 정부조차 이날 41쪽 분량의 ‘혁신성장 추진성과 및 향후 계획’ 자료에서 ▦공유경제, 개인정보 등 핵심 분야의 규제개혁 ▦사회안전망 부족과 일률적 고용환경 등에 따른 다소 경직적인 노동시장 개혁 등을 미흡한 점으로 꼽았다. 실제로 세계 최대 승차공유 서비스 업체인 미국 우버(Uber)는 한국에 진출했다 택시업계 반발로 2015년 서비스를 중단했다. 택시 승차 거부에 따른 서비스 공급 공백을 메우기 위해 창업한 콜버스(전세버스 차량공유)와 풀러스(카풀)의 ‘시간 선택제’도 불법 논란에 발목이 잡혔다.

정부는 이날도 획기적인 혁신성장 정책은 내 놓지 못했다. 규제 혁신을 위해서는 “신산업ㆍ신서비스 창출을 저해하는 대표 규제를 엄선하겠다”는 교과서적 원칙론만 역설했다. 노동시장 개혁에 대해서도 “고용ㆍ복지 지원수준 등 국내 사회안전망 수준에 대한 국내외 비교평가ㆍ분석을 통해 세부 추진전략과 과제를 설정하겠다”는 공허한 선언을 내 놨다.

박희준 연세대 교수는 “노동시장 개혁은 사실 지금이 적기인데 기회를 놓치는 것 같아 걱정”이라며 “혁신성장이란 큰 흐름 속에서 신성장 발전,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가 같이 가야 하는데 엇박자가 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동엽 연세대 교수는 “혁신성장을 위해선 필연적으로 산업구조가 상당 부분 바뀌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먼저 필요한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가 지지부진하다”며 “규제개혁의 경우 공무원이 자신의 규제 권한을 내려놓는 게 핵심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직접 챙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민화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는 “신설기업이 늘어나고 벤처투자가 확대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이들 기업들이 향후 성장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이고 과감한 규제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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