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구본무’ 변화보다 안정
와병 구 회장 지분 물려받으면
그룹 총수 자리 오를게 확실
세금은 7000억 이상 나올 듯
등기 이사 추천 부결 가능성 낮아
총수 대행 구본준 거취 관심
주식시장에 미친 영향도 미미
구광모(40) LG전자 상무가 17일 그룹 지주회사 LG의 등기이사로 추천되며 LG그룹의 4세 경영 승계가 본격화했다. 구본무(73) LG 회장의 와병으로 장남인 구 상무 체제로의 전환에 속도가 붙은 것이다.
3세까지 이어진 경영권 대물림 과정에서 ‘장자 승계 원칙’을 지켜온 LG 오너가의 전통상 구 상무가 그룹 총수 자리를 이어받는 게 확실하지만, 아직 연륜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적지 않은 만큼 직접 계열사를 지휘하기 보다는 당분간 6개 부문별 부회장들의 보필을 받으며 경험을 쌓을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구본무 회장은 50세에 회장직을 맡았다.
LG의 올해 1분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LG의 최대주주는 지분 11.28%를 소유한 구 회장이다. 구 상무의 지분율은 6.24%라 표면적으로는 구 회장의 친동생인 구본준(67) LG 부회장이 가진 지분(7.72%)보다 적다. 하지만 구 상무는 향후 구 회장 지분을 증여 또는 상속의 형태로 물려받을 수 있어 LG의 최대주주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장기적으로는 친아버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소유한 LG 지분 3.45%까지 흡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증여나 상속 규모가 30억원 이상일 경우 과세율은 50%에 달해 세금 부담은 적지 않다. 이날 종가기준 LG의 시가총액은 13조5,975억원이라 구 회장 지분을 모두 받는다면 상속이든 증여든 세금이 7,000억원 이상이란 계산이 나온다. 앞으로 LG의 주가가 상승한다면 세금의 액수는 더욱 불어나게 된다.
구 회장이 지난해 9월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사이언스파크 현장점검 이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와병설이 돌았을 때는 침묵했던 LG는 이날 구 상무의 등기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 “후계구도를 사전에 대비하기 위한 일환”이라고 승계 추진을 공식화했다. 구 회장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이상 불확실성으로 인한 시장의 불안감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구 상무가 LG 이사회에서 등기이사로 추천됐지만 등기이사 선임은 주주총회 의결 사항이다. 다음 달 29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선임 안건이 통과돼야 구 상무는 LG 이사회에 합류해 책임경영에 나설 수 있다. 구 회장이 2004년 구 상무를 양자로 들였을 때부터 예견된 사안인 데다 구 회장과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절반에 가까운 46.68%라 부결될 확률은 낮다.
현재 LG 이사회 구성원 중 사내이사는 각자 대표이사를 맡은 구 회장과 하현회 LG 부회장에 김홍기 재경팀장(전무)까지 3명이고 사외이사는 총 4명이다. 상장사 이사회는 사외이사의 비율이 과반수를 넘어야 하는데, 임시 주총 안건에 신규 사외이사 선임은 없어 구 상무가 새로 사내이사가 되면 기존 사내이사 중 한 명은 빠져야 한다. 주총 이후 구 회장과 하 부회장은 그대로 대표이사 자리를 유지하고 김 전무가 이사회에서 사임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
지난 3월말 기준 LG 계열사는 72개에 이른다. 대표 계열사인 LG전자(33.7%) LG화학(33.3%) LG생활건강(34%) LG유플러스(36%)를 비롯해 모두 LG가 지분 30% 이상을 보유한 기업들이다. 주요 계열사들의 요즘 경영실적이 좋은데다 전문경영인들을 믿고 맡기는 게 LG의 경영 스타일이라 당장 변화의 바람이 계열사까지 불어올 가능성은 적다. 다만 지난해부터 구 회장을 대신해 LG의 총수 대행 역할을 해온 구본준 부회장의 거취는 재계의 관심사다. LG 관계자는 “실력을 갖춘 계열사 부회장들이 구 상무가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조력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LG의 4세 경영 본격화가 발표됐지만 큰 틀에서 변화보다는 안정에 무게가 실리며 주식 시장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다. LG 주가는 전날 대비 0.76% 하락했고 LG전자(+1.14%)와 LG화학(+1.02%) 등은 주가가 조금 상승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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