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프론티어써클 회장 맡아 활동
시위 전단지ㆍ경찰 자수권유 서신
투쟁 참가학생 각서 등 관련 자료
전북대학교 무역학과 최백렬 교수가 1980년 5월 전북대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을 38년 만에 처음 공개했다. 최 교수가 17일 공개한 자료는 당시 시위 전단지를 비롯해 전북도경찰국장 김재국의 자수권고서신 및 봉투, 지도교수가 지시한 투쟁 참가학생에 대한 각서 내용, 1980년 5월 학원자율화를 위한 전북대 써클연합회 자료 등이다.
최 교수에 따르면 5ㆍ18 당시 전북대 민주화운동은 대학 써클연합회 탄생부터 시작했다. 1980년 2월 28일 써클연합회 창립총회 후 본격적인 민주화 투쟁이 시작됐고 총학생회장 김희수(상대 경영학과)를 비롯해 이광철(문리대 철학과), 고 김형근(사범대)이 선봉에서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다. 당시 최 교수는 전북대 상대 2학년에 재학 중이었고 영어 학술동아리 ‘프론티어’ 회장을 맡으며 서클연합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전북대생들은 전국 최초로 5월 2일 가두투쟁에 나서 수많은 학생들이 정문과 금암동 파출소 경찰 저지선을 뚫고 옛 도청 앞까지 진출해 시위를 벌이다 많은 학생이 다치거나 경찰에 체포됐다. 이를 기점으로 5월부터 전국적으로 민주화운동이 들불처럼 타올랐고 전두환 군부는 5월 17일 자정을 기점으로 계엄령 확대조치를 발동하고 대학에 군대가 진입하게 된다.
당시 제1학생회관에서 농성하던 많은 학생들이 계엄군에 의해 끌려가고 이세종 열사(농대 2학년)가 5월 민주화운동의 전국 최초 희생자가 된다. 계엄군이 학교에 들이닥칠 때 민주화 투쟁을 주도했던 일부 학생들은 왕릉 방향으로 도주해 다음날부터 시내 오거리에 모여 가두투쟁을 준비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자 최 교수 일행은 시민들에게 광주의 비극적인 상황을 알리고 민주화운동에 동참하자는 전단지를 만들어 시내에 뿌리고 5월 24일 오후 3시 전면적인 시민투쟁을 선포했다.
전단지의 주요 내용은 10ㆍ26사태와 박정희 피살, 12ㆍ12사태의 진상, 5ㆍ18 계엄확대와 휴교령, 광주 민중봉기의 진상 등을 알리고 시민ㆍ학생들에게 5월 24일 오후 3시 오거리에서 비폭력 평화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24일 새벽 전단지를 살포하다 몇몇 학생이 계엄군에 체포돼 고초를 겪고 계획된 비폭력 평화시위는 무산됐다.
최 교수는 “전북대는 80년 3월 19일 써클연합회 주관으로 학원 자율화를 위한 첫 공청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민주화 투쟁이 시작돼 5ㆍ18 이후에도 계속됐지만 알려지지 않았다”며 “시위를 모의했던 학생들은 체포돼 감옥에 가거나 경찰서 유치장에서 보내고 재학 시절 내내 정보기관의 감시를 받고 살아야 했다”고 회고했다.
하태민 기자 ham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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