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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청춘의 분노… ‘버닝’ 칸을 불태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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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청춘의 분노… ‘버닝’ 칸을 불태우다

입력
2018.05.17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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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 8년 만의 복귀작

세 젊은이의 만남이 빚는 서스펜스

한국 사회의 계급주의 감각화

“완벽한 연출” “걸작 그 자체” 호평

황금종려상 첫 수상 가능성 높여

16일(현지시간)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영화 ‘버닝’ 공식 상영회가 끝난 후 관객이 기립박수를 치고 있다. 칸=김표향 기자
16일(현지시간)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영화 ‘버닝’ 공식 상영회가 끝난 후 관객이 기립박수를 치고 있다. 칸=김표향 기자
프랑스 칸에서 열리고 있는 제71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경쟁부문에 초청된 영화 '버닝'의 제작자 이준동(왼쪽부터) 파인하우스필름 대표와 배우 스티브 연 전종서 유아인, 이창동 감독이 16일(현지시간) 공식 상영회를 앞두고 레드카펫 위를 걷고 있다. 칸=AFP 연합뉴스
프랑스 칸에서 열리고 있는 제71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경쟁부문에 초청된 영화 '버닝'의 제작자 이준동(왼쪽부터) 파인하우스필름 대표와 배우 스티브 연 전종서 유아인, 이창동 감독이 16일(현지시간) 공식 상영회를 앞두고 레드카펫 위를 걷고 있다. 칸=AFP 연합뉴스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영화 ‘버닝’의 이창동 감독(왼쪽부터)과 배우 유아인, 스티브 연, 전종서가 17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앞두고 포토콜 행사를 치르고 있다. 칸=AP 연합뉴스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영화 ‘버닝’의 이창동 감독(왼쪽부터)과 배우 유아인, 스티브 연, 전종서가 17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앞두고 포토콜 행사를 치르고 있다. 칸=AP 연합뉴스

뜨거운 갈채가 뤼미에르 극장 안을 가득 채웠다. 존경과 예우가 실려 묵직해진 그 소리는 공중에 흩어지지 않고 커다란 파동이 되어 객석으로 되돌아 왔다. 채 풀려나지 못한 긴장감에 숨이 막혀서 환호성조차 지를 수 없었던 그 시간은 5분간 계속됐다.

제71회 칸국제영화제(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영화 ‘버닝’이 16일(현지시간) 공식 상영에서 베일을 벗었다. “이창동 감독의 마스터피스”라는 소문을 눈으로 확인하는 자리였다. 어김없이 기립박수가 나왔다. 관례만은 아니었다. 특히 올해 경쟁부문 초청작들이 기대 이하 반응을 얻는 데 비춰볼 때 ‘버닝’에 쏟아진 반응은 상당히 호의적이라는 게 영화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객석을 둘러보던 주연배우 유아인과 스티븐 연은 눈시울을 붉혔다. 2010년 칸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시’ 이후 8년 만에 돌아온 이 감독은 두 손을 모아 인사했다. 제작자인 이준동 파인하우스필름 대표는 가슴에 단 배지를 방송카메라에 보여줬다. 이 감독은 물론 임권택, 박찬욱, 홍상수 등 한국 영화감독들을 세계에 알린 칸영화제 자문위원 피에르 르시앙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르시앙은 칸영화제 개막을 사흘 앞둔 지난 5일 별세했다.

생전 고인은 ‘버닝’에 추천사를 남겼다. “영화가 원작자가 꾸며낸 것들로부터 멀어져서 영화 자체로서의 맥박으로 고유한 생명력을 얻는 순간, 그보다 더 값진 것이 있을까.” 고인의 말대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헛간을 태우다’에서 출발한 이 영화는 이 감독의 해석을 거쳐 고유한 영상 미학으로 새롭게 창조됐다. 카메라는 찢어지고 부서진 비닐하우스처럼 세상에 존재감 없이 내던져진 청춘의 분노를 비추며 한국 사회의 계급주의를 감각화한다.

영화 '버닝'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제공
영화 '버닝'의 한 장면. CGV아트하우스 제공

택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청년 종수(유아인)는 소설가를 꿈꾸지만 어떤 소설을 써야 할지 알지 못한다. 종수는 어린 시절 친구 해미(전종서)를 통해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을 소개 받는다. “재미만 있으면 나는 뭐든지 한다”고 말하는 벤은 자신의 호화로운 세계에 종수와 해미를 초대한다. 자유롭고 도발적인 해미는 삶의 의미에 굶주린 자의 춤을 추며 종수와 벤을 잇는다.

세 사람의 만남은 소똥 냄새가 풍겨오는 낡은 시골집 마당에서 마시는 고급 와인처럼 어딘가 부조리하다. 타는 듯한 노을이 이들을 감싸면 묘한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어릴 적 집을 나간 엄마의 옷을 태워버린 기억을 갖고 있는 종수에게 벤이 말한다. “가끔씩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취미를 갖고 있다”고, “쓸모 없는 비닐하우스들이 내가 태워주길 기다리고 있다”고,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지게 할 수 있다”고. 벤의 고백 이후 해미가 사라지고, 종수는 불태워진 비닐하우스를 찾아 헤맨다.

무기력한 얼굴에 분노를 감춘 종수는 청춘의 초상인 동시에 부조리에 억눌린 자아를 대변한다. 벤은 도통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인 세상 그 자체다. 그래서 둘의 대립은 필연이다. 특별한 사건 없이도 그들의 관계가 숨막히는 서스펜스를 자아낸다. 그 서스펜스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전복이냐 패배냐의 갈림길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앞서 ‘밀양’(2007)과 ‘시’에서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의 구원에 대해 질문했던 이 감독은 ‘버닝’에서 새로운 주제의식을 꺼냈다. 세상을 보는 시선은 변하지 않았지만, 문법이 달라졌고 영화 안에 품어낸 세계가 깊어졌다. 다만 모든 프레임과 대사가 메타포이다 보니, 메시지가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현지에선 “러닝타임 148분이 너무 길었고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반응도 나왔다.

하지만 세계 영화인들의 온도는 조금 달랐다.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순수한 미장센으로서 영화의 역할을 다하며 관객의 지적 능력을 기대하는 시적이고 미스터리한 영화”라고 평했고, 프랑스 배급사 디아파나의 미쉘 생-장 대표는 “미장센과 연기가 환상적이었다”며 “그야말로 걸작 그 자체”라고 감탄했다. 지오바나 풀비 토론토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도 “모든 프레임 하나하나가 완벽하게 연출된 듯했다. 영화가 끝났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계속 더 있었으면 하고 바랄 정도였다. 이창동 감독이 이렇게 엄청난 영화로 돌아온 것이 너무 기쁘다”며 거장의 귀환을 반겼다. 세계 영화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유명 인사들의 호평이 쏟아지면서 ‘버닝’은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의 한국영화 첫 수상 가능성을 한층 밝혔다. 폐막식은 19일이다.

칸=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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