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명대사에 빗대 “4차산업혁명 할래, 그냥 죽을래!” ‘미안하다, 4차산업혁명이다’라 부르짖기 전에 먼저 거울을 보고 자기가 배우 소지섭보다 더 멋있는지부터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아니라면 4차산업혁명 제대로 대응 못하면 나라도 망하고, 내 아이도 망할 것처럼 윽박지르지 말아야 한다.
사실 4차산업혁명 같은 거창한 말이 아니라 해도 디지털 시대 도래가 우리 삶을 엄청나게 변화시켰고, 또 변화시킬 것이라는 것쯤은 모두가 동의한다. 저런 식으로 호들갑스럽게 윽박지르면서 한국 사람들 특유의 ‘피난민 기질’을 자극하는 건, ‘미래에 있을 4차산업혁명 낙오자’들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데만 도움을 줄 뿐, 정작 실질적 대응책 마련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이 책은 독일 사례를 통해 차분한 대응, 그리고 대응의 구체적 내용을 알려준다는데 장점이 있다. 미국이 디지털로 치고 나가자 독일도 디지털 시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차이점은 ‘혁명 할래, 죽을래’ 윽박지르기 대신 정공법을 택했다는 사실이다. 2014년 디지털 문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 2015년에는 ‘노동 4.0 녹서’를 내놨다. 중요한 건 여기서 포인트는 “미래 세상에서 ‘좋은 노동’이란 무엇인가”에 주어져 있다는 점이다. 광범위한 토론을 거쳐 2016년 ‘노동 4.0 백서’를 내놨다. 책은 이 내용에 집중한다.
노동 4.0
이명호 지음
스리체어스 발행ㆍ116쪽ㆍ1만2,000원
4차산업혁명이 관심을 끌면서 등장한 소몰이 식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 전망은 여기저기 널려 있으니 그 내용에서 벗어난 지점을 꼽자면 이렇다.
디지털 기술은 탄력적 노동을 가능케 하지만 과잉노동과 풀타임 노동 압박으로도 이어진다. 충분히 예상되는 이런 노동조건 변화에 따른 문제점들은 “사후 반응하기보다 적극적 예방조치”가 모색돼야 한다. 특히 앞으로 등장하게 될 다양한 노동 유형에 대비, 유형별로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디지털화는 플랫폼 기업의 독점을 강화하면서 여기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크라우드 워커’의 노동 조건은 더 악화된다. 서로간 이해관계가 정교하게 조정돼야 한다. 최근 네이버 논란을 떠올려보면 된다. 디지털화로 인한 생산 이익은 비용 절감보다 임금 상승으로 이어져야 한다. 디지털로 대체되기 힘든 육아, 요양, 가사 등 양질의 돌봄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 분야 노동조건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
뭐만 새로운 게 나왔다 하면 ‘이제 꼼짝없이 다 죽었어’ 을러대기 바쁜 사회와 ‘그렇다면 기존 노동의 좋았던 점은 어떻게 유지, 발전시킬까’를 고민하는 사회의 품격 차이는 이렇게 크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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