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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나무의 얼굴-문재인ㆍ김정은의 반송

입력
2018.05.17 18:5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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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風水)는 바람의 얼굴과 물의 마음을 읽는 일이라 한다. 자연과의 교감으로 마음의 평정을 찾는 동양사회의 오래된 풍속이다. 자연에 포근하게 안기고 싶은 염원에 다름 아니다. 나무들이 살 집인 수목원을 설계하면서 왠지 허전한 구석에는 큰 나무를 심어 균형을 맞췄다. 기(氣)가 빠져나가는 것 같은 곳에는 일부러 돌담장을 쌓아 비보(裨補)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설명할 수 있는 이론에 따르기보다 느끼는 대로 실천에 옮길 뿐이다. 눈에 거슬리는 풍경은 사계절을 몇 차례 지켜보면서 원인을 찾기도 하지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나무들이 자라면서 스스로 자연 치유하는 생태계의 능력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한계를 훨씬 넘어 유쾌한 배반을 한다. 나무들마다 햇볕을 차지하려는 경쟁에 알맞은 자기 수형(樹形)을 만들며 연출하는 숲의 풍경은 신비롭기도 하다. 서로서로 경계를 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지켜내는 조화가 그것이다. 나무의 시간과 사람의 시간이 달라서일 것이다. 아기 소나무도 두 해 동안 영글었던 솔방울이 한 해 땅에 묻혔다가 세상에 고개를 내밀었으니 이미 삼사 년의 시간을 비축하고 있다. 돌을 앞둔 손자 녀석의 앙증스러운 발버둥을 여기서 보며 가슴이 뛴다.

수목원에 반송(盤松) 3,000여 그루를 키운 지도 벌써 7년이 되었다. 20만여 평의 수목원 디자인을 꿈꾸며 첫 삽을 뜬 지 3년 만에 백 년 만의 폭우가 일으킨 산사태가 5,000 그루 묘목밭과 골짜기 1㎞를 초토화시켰다. 그때 손을 들어야 했지만 생명에 대한 애착이 훨씬 컸다. 수해복구로 작은 봉우리 하나를 들어내자 3만 평의 공지가 생겼다. 나무를 심어야 했다. 합천 댐 수몰 위기에 놓인 반송 500주를 옮겨 살리면서 반송과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이제 3,000그루가 넘는 소문난 대규모 반송밭이 되었다. 반송은 초가집처럼 둥글게 생긴 소나무다. 소나무의 곧게 뻗은 직근(直根)을 자르고 측근(側根)만을 남겨 아래부터 여러 가지가 나게 하는 것으로 반송이란 수종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12~3년생 반송들이 시집와서 뿌리를 내리고 탄력을 받았는지 그 수세(樹勢)가 늠름해졌다. 눈 아래 내려다보이던 녀석이 이제는 당당하게 나를 압도한다. 솜털이 보송보송하던 아들이 성장하면서 수염이 보이며 내 앞에 튼실하게 마주했던 기억과 겹친다. 반송의 성장을 흐뭇해 하다가 가지치기를 게을리 했는지 대부분의 반송들이 아래가지가 땅을 뒤덮는 ‘다복솔’이 되었다. 두세 해는 바람 길을 열어주는 가지치기로 몸살을 앓았다. 수형을 어떻게 정하여 나무를 키우는가는 나무의 뜻보다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출 수밖에 없다.

세상을 뒤흔든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3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오래된 것 같은 느낌은 갈구하던 환희의 폭포수 때문인지 모른다. 태어나면서 전쟁의 공포 속에 한평생을 갇혀 지낸 분단의 음습한 동굴 속을 뚫은 빛줄기였다. 두 정상이 군사분계선에 반송을 기념식수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돌에 새긴 ‘평화와 번영을 심다’라는 민족의 염원이 이 나무의 얼굴이었다. 방송에서는 ‘소나무’라고 했지만, 바른 이름은 65년 된 ‘반송’이다. 20년 전 정주영 현대 회장이 1,001마리의 소떼와 함께 고향을 찾아 휴전선을 넘던 길목이 그곳이다. 새로운 길은 선각자의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 비무장지대의 상징처럼 가지도 손질되지 않은 원형 자체의 나무얼굴이다. 처음부터 키를 낮춰 키웠는지 하늘을 향해 비상하고픈 용틀임을 억누르는 수줍은 모습이 우리를 닮았다. 5월의 폭우처럼 수많은 천둥과 비바람이 이 나무를 흔들어 댈 것이다. 비겁하고 편견에 가득 찬 잔가지는 과감하게 잘라내 바람 길도 열어주며 늠름한 거목으로 키울 일은 우리들의 몫이다.

조상호 나남출판ㆍ나남수목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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