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나이에 데뷔해 연기를 하다 보니 표현에 대한 강박이 있었어요. 다이내믹한 표정이나 유려한 연기 등을 잘 하고 싶어서 애쓰던 순간들 때문에 너무 외향적이 된 제 관성에서 벗어나려고 했습니다."-유아인
'버닝'은 러닝타임이 148분으로, 통상 두 시간 남짓 진행되는 영화들에 비해 상당히 긴 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유아인은 애달프고 무기력한 얼굴을 보여준다. 이 시대 청춘을 대변하는 종수와 완벽하게 맞닿아 있다.
전종서가 과거를 회상하는 대사를 통해서도 ‘얼굴’이 갖는 또 다른 의미가 표현된다. 빈 우물에 갇혀 좁고 둥근 하늘 만을 바라보던 어린 소녀는 그의 얼굴을 본 뒤 극적으로 구출됐다. 그때 소녀가 본 소년의 얼굴은 아마 구원자 그 자체였을 것이다.
이창동 감독의 신작 '버닝'은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가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를 만나고, 그녀에게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을 소개 받으면서 벌어지는 비밀스럽고도 강렬한 이야기를 다룬다.
'완득이'의 고등학생, '베테랑'의 안하무인 재벌 3세, '사도'의 사도세자까지 청춘의 각기 다른 얼굴들을 남다른 연기력으로 소화해온 유아인은 '버닝'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한 면모를 보여준다.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꾸리는 종수 앞에 갑자기 나타난 해미는 놀람과 설렘을 안겨준다. 도발적인 해미의 모습에 종수는 점점 끌리고,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벤이 나타난 뒤 종수에겐 절망적 나날들이 이어진다. 급기야 해미가 사라지면서 종수는 심한 혼란에 빠진다.
이번 작품에서 힘을 쭉 빼고 연기하는 유아인의 모습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캐릭터의 면모를 낱낱이 드러낸다.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외로움, 법정에 선 아버지를 대신한 죄의식, 정신적·물질적 빈곤이 그의 얼굴에 모두 내려앉아 있다. 허름한 옷차림에 처진 눈매, 살짝 입을 벌리고 다니는 모습까지 무기력한 청춘에 완벽히 빙의했다.
이창동 감독은 종수 캐릭터에 대해 "겉으론 무기력해 보이나 내면이 강렬한 인물"이라 설명했다. 그는 "드러내지 않으면서 내면의 강인함을 보여준다는 것은 굉장히 힘들다"며 종수를 연기한 유아인을 칭찬한 바 있다.
유아인은 단순한 캐릭터 표현에 그치지 않고 내면적 심리 변화를 탁월하게 표현해 극적 긴장감을 유발한다. 전라의 뒤태까지 노출하며 파격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 완성에 일조했다. 한국계 미국인 스티븐 연이나 신예 전종서와의 호흡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버닝'은 올해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칸이 사랑하는 이창동 감독인 만큼 수상 여부에도 뜨거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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