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 조치로 유례없는 돈벼락을 맞은 미국 대기업들의 그 돈을 설비투자나 임금인상 대신 자사주 매입에 쏟아 붓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6일 미국 대기업의 자사주 매입이 1998년 이후 분기 기준 최대 규모(1,580억달러ㆍ전기 대비 15% 상승)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또 뉴욕 증시의 주요지수인 ‘S&P 500’ 에 속한 미국 기업들이 올해 자사주 매입과 배당에 1조달러(1,080조원)을 사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JP모건체이스도 올해 미국 기업의 자사주 매입 규모를 지난해(5,250억달러)보다 50% 넘게 늘어난 8,000억달러로 예측했다. 실제로 미국 증시 대장주인 애플은 이달 초 1,000억달러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주주 배당금도 16% 올린다고 발표했다.
자사주 매입은 말 그대로 기업이 보유현금으로 증시에 풀린 자사 주식을 사는 것으로 기업가치는 달라지지 않고 주식 수만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발행주식 수를 줄여 주당순이익(EPS)을 늘리기 때문에 해당 종목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을 높이는 역할도 한다. 기업은 아직 수익성이 건재하다는 것을 주주들에게 증명할 수 있다.
미국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을 늘리는 데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정책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미 시장조사업체 GBH인사이트에 따르면 2004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한시적인 법인세 혜택을 주는 유사한 정책을 시행했을 때에도 미 본토로 유입된 기업들의 해외 자금 대부분이 자사주 매입에 쓰였다.
자사주 매입은 지난 수년 간 미국 증시를 끌어올린 요인 중 하나지만 논란의 여지도 많다. 미국 증시 자사주 매입은 주가 조작으로 간주해 1970년대까지만 해도 불법이었다. 1982년 레이건 대통령 당시 규제 완화의 일환으로 적법화 됐다.
일부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연구 개발 투자와 유지 보수 등에 투입해야 할 비용을 자사주 매입으로 쏟아 붓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자사주 매입으로는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지도 않는다는 비판도 거세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찰리 멍거 부회장은 “자사주 매입은 부도덕한 행위”라고 밝힌 바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도 “경영진은 장기 이익을 바라봐야 한다”며 미국 대기업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자사주 매입을 경고해 왔다.
하지만 WSJ는 자사주 매입 이후 기업들의 주가 상승 사례를 들어 이런 경향이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WSJ는 “애플은 자사주 매입 발표 이튿날 주가가 4.4% 올랐고 주간 단위로는 2011년 이후 가장 큰 폭인 총 13%가 상승했다”고 전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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