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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선거슬로건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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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선거슬로건의 힘

입력
2018.05.16 18:0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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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는 현직인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의 손쉬운 연임으로 끝날 것처럼 보였다. 구소련 붕괴에 따른 외교적 수혜를 누린데다 1차 이라크 전쟁(걸프전) 승리로 베트남전 악몽을 씻어 내 지지율이 한때 89%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엘 고어, 마리오 쿠오모 등 유력 민주당 후보들이 잇달아 몸을 사리는 바람에 상대는 남부의 작은 주 아칸소 주지사를 지낸 '40대 촌뜨기' 빌 클린턴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결과는 43%를 득표해 선거인단을 두배 가까이(370대 168) 확보한 클린턴의 압승이었다.

▦ 반전을 이끈 일등공신은 지금까지 인구에 회자되는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선거구호였다. 부시의 강점은 무시하고 약점인 경제성과에 공세를 집중한다는 클린턴 선거캠프의 전략이 압축된 구호였다. 실제 1990년 3분기부터 미국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시작했고 물가와 실업률도 고공행진했다. 이 구호로 유권자들이 부시의 외교ㆍ군사적 성취에 취해 잠시 잊고 있던 고된 삶을 건드리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케네디 향수를 자극하며 노쇠한 부시와 젊은 클린턴을 대비시킨 것도 주효했다.

▦ 한반도 평화 여정을 위한 남북한과 미중 등 주변국의 수싸움이 치열한 가운데 6ㆍ13 지방선거를 향한 여야의 시계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내달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까지의 해빙무드로 선거를 치르려는 쪽과 그 '블랙홀'을 깨려는 쪽의 기 싸움도 거세지고 있다. 정책과 인물도 중요하지만, 역시 선거의 최전선은 슬로건이고, 이는 대체로 야당의 권리다. 문제는 대통령 지지율 80% 안팎, 당지지율 50%대 중반인 여당을 저격하는 한마디를 찾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자칫하면 상대 프레임에 말려들 수도 있다

▦ 자유한국당이 즉흥적으로 만든 '나라를 통째 넘기시겠습니까'는 번지수를 잘못 짚은 대표적 사례다. 주사파 타령, 반공 유령에 홀려 정세 변화에 눈감은 자폐성만 빛난다. 거칠고 메시지가 모호하지만 '경제를 통째로 포기하시겠습니까'는 그나마 낫다. 상대의 칼날이 무디니 민주당의 슬로건 '나라다운 나라, 든든한 지방정부, 내 삶을 바꾸는 투표!'도 밋밋하다. 그나마 정의당의 재치가 눈에 띈다. '5비2락'이란다. 5번 정의당을 찍으면 나라가 비상(飛)하고 2번 한국당을 찍으면 추락(落)한다나.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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