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1000억원 이상 30여곳도
재산가 20여명도 현미경식 조사
“1000억원대 탈루 기업 포착”
제조업 분야 대기업 회장 A씨는 창립자인 아버지가 사망 전 회사 임직원에게 명의신탁한 계열사 주식(차명주식) 수백억원 가량을 실명으로 전환하지 않고 그대로 물려받는 방식으로 상속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A씨는 이후 차명주식 일부를 매각하며 양도소득세(대주주의 경우 양도차익의 20%)도 신고하지 않았다. 소액주주인 임직원 명의로 주식을 장내에서 매각하면 양도세가 면제되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상속세 및 양도세 수백억원을 추징하고, 조세포탈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고 말했다.
국세청이 일감몰아주기와 차명재산 등을 통해 경영권을 편법 승계한 대기업 사주일가의 ‘세금 없는 부(富)의 세습’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김현준 국세청 조사국장은 16일 “대기업 지배구조가 2ㆍ3세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편법ㆍ탈법을 통한 경영권 세습이 적지 않다”며 “편법 상속ㆍ증여 혐의가 있는 50개 대기업ㆍ대재산가에 대한 전국 동시 세무조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세부적으로는 매출 1,000억원 이상 대기업 30여곳(사주 포함), 수백억원의 재산을 보유한 대재산가 20여명이 조사 대상이다. 김 국장은 “사회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기업, 100대ㆍ200대 기업 등이 포함됐다”고 말했다.
이번 세무조사 대상에는 원자재 납품 과정에서 자녀가 운영하는 기업을 중간에 끼워 넣고 ‘통행세’를 보장해준 대기업 사주도 있었다. 계열사가 코스닥 상장기업과의 합병을 통해 우회상장 하기 직전 해당 계열사 주식을 자녀에게 양도해 상장차익을 변칙 증여한 기업인도 조사 대상에 올랐다. 국세청은 임직원 명의로 다수의 외주가공업체를 설립한 후 외주 가공비를 과다 지급하고 그 차액을 비자금으로 조성해 승계 ‘종잣돈’을 마련한 사례도 살펴보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탈루혐의 금액이 1,000억원대에 이르는 대기업도 있다”고 귀띔했다.
다만 국세청은 대상 기업의 정상 거래까지 전방위로 검증하는 ‘저인망’식이 아닌, 대기업 사주일가의 편법 상속ㆍ증여 혐의에만 집중하는 ‘현미경’식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국세청은 지난해 대기업ㆍ대재산가의 지능적 탈세 1,307건을 조사해 역대 최대 규모인 2조8,091억원을 추징(23명 검찰 고발)한 사실도 공개했다.
한편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역외탈세 근절을 위해 국세청ㆍ관세청ㆍ검찰 등이 참여하는 ‘해외범죄수익환수합동 조사단’ 설치를 지시한 것과 관련, 김 국장은 “실무진에서 상황을 파악 중”이라며 “검찰 등과 협력해 빠른 시일 내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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