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장관이 16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를 사과했다. 문재인 정부를 대표한 첫 번째 공식 사과다.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악용한 건 박근혜∙이명박 정권이었으나, 문체부를 비롯한 정부 공공기관이 ‘집행기관’으로서 국가 범죄에 가담한 것을 거듭 사과한 것이다. 도 장관은 이날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정부의 문화정책 구상을 발표하면서 “국가가 문화예술인을 지원에서 배제한 것은 물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침해함으로써 깊은 상처와 아픔을 남겼다”며 허리를 숙였다. 도 장관은 “인간에겐 감시받지 않을 권리, 검열당하지 않을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면서 “우리가 추구하는 ‘사람이 있는 문화’는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에서만 실현될 수 있기에 불행한 사태가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도 장관의 사과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 위원회’(진상조사위)가 최근 문재인 정부의 사과를 요구한 것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이원재 진상조사위 대변인은 전화통화에서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주도한 건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이라며 “문재인 대통령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직접 사과해야 한다는 입장은 그대로”라고 말했다.
문체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를 공공기관에서 제외하는 것을 포함한 블랙리스트 관련 제도개선안을 공개했다. 늦어도 2020년까지 문예위를 독립시켜 정부 이름으로 문화예술계를 쥐고 흔들 수 있는 길을 막겠다는 취지다. 문예위는 문화예술계 지원 실무를 총괄하는 문체부 산하 기관이다. 문예위 위원장은 문체부 장관이 임명하는 대신 위원회에서 호선으로 뽑고, 문화예술 지원금 배분도 위원회가 자율적으로 하게 된다. 내년엔 이름을 한국예술위원회로 바꾼다. 또 예술가 지위 및 권리보호에 관한 법률(가칭)을 제정하고, 예술가권리보호위원회를 만들어 문화예술계를 외압으로부터 보호한다.
‘사람이 있는 문화-문화비전 2030’이라 이름 붙인 문화정책 계획에는 ▦‘첫걸음 문화 카드’ 발급으로 초등학교 입학생 가족에게 문화비 지원 ▦문화예술∙관광∙체육 등 관련 법률에 성차별 금지와 성평등 실현 위한 법적 근거 마련 ▦남북작가 합작 문예지 ‘통일문학’ 복원을 비롯한 남북한 문화∙체육 교류 확대 추진 등이 포함됐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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