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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벼락 치듯 오는 통일을 원하는가

입력
2018.05.15 20: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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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9일 게재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 방문 사진.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 위원장이 8일 다롄 동쪽 외곽 해변에 있는 방추이다오(棒槌島) 영빈관에서 시 주석과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9일 게재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 방문 사진.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 위원장이 8일 다롄 동쪽 외곽 해변에 있는 방추이다오(棒槌島) 영빈관에서 시 주석과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1년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세계 최강 항모 전단이 한반도로 향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로켓들이 태평양 상공으로 화염을 뿜었던 지난해 봄. 우리 국민이 지닌 통일의식은 캐물을 필요 없이 자명했다. 부모처럼 자신을 돌봤던 고모부 장성택을 무참히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이복형 김정남을 말레이시아에서 독살한 김정은. 전쟁광이 통치하는 북한과 ‘형제애’를 나누겠다는 국민을 찾기 힘든 때였다.

통일연구원이 당시 ‘남북통합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를 진행한 결과는 이러한 분위기를 벗어나지 않았다. 조사에 응한 성인 남녀 1,000명 가운데 ‘분단과 통일이 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이 59%에 달했다. 사실상 통일에 무관심하다는 이들이다. 궁극적으로 통일이 필요하다는 답은 57%에 그쳤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대다수 성인이 틀림없이 따라 부를 정도로 ‘통일 교육’이 철저히 이뤄진 이 땅에서 측정된 여론이라 보기 힘든 수준이다. 2017년 전쟁위협은 분단 이후 차곡차곡 몸집을 키워온 통일의 열정을 조각내고 있었다.

불과 1년. 세상은 급변해 곳곳에서 통일의 노래가 들린다. 휴전선에 가까울수록 땅값이 치솟을 것이라는 선술집 아마추어 중개사들의 목소리가 확신으로 드높고, 평양지국 개설을 공표한 언론사, 북한 지하자원 채굴로 벌어들일 ‘대박’을 노리는 자칭 전문가들이 다음 소절을 잇는다. 지난달 27일 군사분계선을 사이좋게 넘나든 남북 정상의 드라마를 지켜보고, 이보다 극적일 것으로 기대되는 내달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수도 없이 상상하는 요즘. 우리 사회는 어느 때보다 통일 친화적으로 됐다.

1953년 정전 이후 65년 동안 감히 던지지 않았던 ‘통일을 지금 서둘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더는 묻어둘 수 없는 시간이 됐다. 지난 주말 일본 언론들은 싱가포르 회담장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등장할 수 있다는 전망기사를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빛나는 장면’을 하필이면 시 주석과 공유할 이유가 없다는 게 중론이지만 만일 그가 김정은과 더불어 시 주석과 선다면 이 자리는 정전협정 서명국가들이 모여 한반도 위기를 공식적으로 종식하는 ‘종전선언의 현장’이 될 수 있다. 미국의 까다로운 비핵화 주문을 김정은이 수용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통 큰 대가로 미국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 루트를 약속하면 겉보기에 통일을 가로막을 장애물들은 대체로 치워지는 셈이다. 벼락처럼 통일이 닥쳐도 이상할 게 없는 시나리오다.

그렇다면 고작 1년여 만에 양극단의 한반도 상황을 겪어버린 우리가 서둘러 통일 절차를 이행하는 데 무리는 없을까. 이 같은 의문에 지미 카터,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주선했던 박한식 조지아대 명예교수는 최근 저서에서 “북한 정권이 쉽사리 붕괴해 우리측에 흡수되는 통일을 기대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밝혔다. 남북교류가 단절됐던 박근혜 정권 동안 우리 정부와 국민은 김정은과 북한의 ‘허상’에 길들여졌고, 그만큼 급박한 통일을 주도할 정도로 북한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우려다. 신화나 구전이 아닌 평양 체류 경험과 객관적 자료들에 의존해 북한을 과학의 방법으로 이해하려는 헤이즐 스미스 런던 SOAS 한국학연구센터 교수는 ‘김정은에 세뇌될 정도로 북한 주민이 무지하다는 식의 잘못된 캐리커처’를 경계한다. 우리의 민족주의와 크게 다른 ‘북한 민족주의’에 치중해온 북한이 남한에 흡수되는 상황은 더욱 비현실적이다.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목격했듯이 주변국들이 ‘강한 한국’의 탄생 과정을 순순히 도와줄 리 만무하다. 통일의 과녁이 지난해보다 가까이 다가온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과녁을 흔드는 바람은 잠잠해지지 않았다. 천천히 숨을 고르고 시야를 밝힌 후에 시위를 당겨도 늦지 않다.

양홍주 기획취재부장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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