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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조금 더 비싸고 불편하고 느리지만 리버마켓에는 특별한 뭔가가 있죠”

입력
2018.05.15 20:0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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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강변 따라 1.2㎞ 문호리 마켓

직접 재배하고 만든 물건만 판매

주말에 6만명 몰려 양평 명물로

이젠 서울ㆍ충주ㆍ양양서도 번갈아

[저작권 한국일보]지난 5일 서울 성동구 새활용플라자에서 열린 '리버마켓'에서 손정미씨가 장을 보고 있다. 이혜미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지난 5일 서울 성동구 새활용플라자에서 열린 '리버마켓'에서 손정미씨가 장을 보고 있다. 이혜미 기자

# 린넨 상하의ㆍ참나무서 키운 표고…

사진 찍고 거기에 맞는 액자 맞추니

30만원 훌쩍 넘었지만 마음 든든

“몸과 마음 치유하는 나만의 방식”

“들기름과 참기름 한번 보고 가세요! 집에서 직접 짜서 훨씬 고소하고 몸에 좋아요!”

지난 5일 서울 성동구 새활용플라자에서 열린 ‘문호리 리버마켓’(리버마켓), 행인을 한 명이라도 붙잡으려는 상인들의 호객과 손님들의 흥정이 경쾌하게 감돌았다. 유독 눈에 띄는 손님이 있었다. 마트도 백화점도 안 다니는 ‘노마트족’(No-mart족)을 지향한다는 손정미(46)씨다. 175㎝ 큰 키도 이목을 끌지만 “오랜만이에요” 큰 소리로 인사하며 인파 속을 휘젓고 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리버마켓의 대표인 안완배 감독은 “무애(손씨의 필명)씨와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워낙 우리 마켓에서 유명해 모든 셀러(판매자)가 안다”고 했다.

실제 손씨는 리버마켓 셀러라면 모두가 아는 특별한 손님이다. 매달 셋째 주 경기 양평군 문호리에서 열리는 마켓뿐 아니라 첫째 주 서울에서 열리는 마켓, 둘째 주 강원 양양 마켓에도 직접 차를 몰고 장을 보러 간다. 강원 철원 자택에서 저런 마켓까지 운전해서 장을 보러 다닌 지 어느덧 2년째다. 마켓에 한번 갈 때마다 30만~40만원어치는 거뜬히 구매한다. 아직까지 일부 셀러 부스에서는 카드결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손씨는 철원에서 출발하기 전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하는 수고로움도 기꺼이 감수한다.

리버마켓은 2014년 4월 북한강변 1.2㎞를 따라 예술인 20여명이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 팔며 시작됐다. ‘문호리에 특이한 마켓이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매달 셋째 주 6만명이 북한강변을 찾게 만드는 양평의 명물로 성장했다. 안 감독은 “리버마켓은 상인회도, 외부의 도움도 없이 셀러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꾸려지는 ‘작가주의 마켓’을 지향한다”고 말한다. 자기가 직접 재배하거나 만든 물건만 갖고 나와 파는 것이 리버마켓의 제1규칙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엔 싱싱한 달걀과 직접 재배한 토마토, 집에서 구운 크루아상은 물론 직접 나무를 깎아 만든 도마와 의류까지 만든 이의 손을 탄 물건이 넘쳐났다. 손씨는 “리버마켓의 철학이 훌륭하다고 생각해 2년 동안 이곳에서 대부분의 장을 보고 있다”며 “음식이 아니더라도 집에 있는 나무 접시나 팔찌, 옷 등 모든 물품은 이곳에서 산 것이다”고 했다.

오후 1시, 이날 쇼핑의 첫 목적지는 ‘휴’라는 이름의 자연주의 옷을 만드는 셀러의 부스다. 손씨는 이날 옷을 사기 위해 미리 몸의 치수를 재뒀다. 여름철 통풍이 잘되는 린넨 소재의 검은색 바지와 검은색 상의 한 벌을 13만원 주고 샀다. 어릴 적엔 백화점 명품 브랜드를 즐겨 입었다는 손씨는 “이미 입고 있는 옷도 ‘휴’의 옷”이라며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데다가 친환경적인 옷을 이 가격에 살 수 있으니 백화점의 옷들이 터무니 없이 비싸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장바구니를 양손 가득 들고 걸어가는 손씨를 향해 “무애, 커피 한 잔 마셔”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봄이네오이’ ‘돋을볕 농장’ ‘자영농장’의 주인들은 손씨의 동네 친구들로, 일명 ‘철원팀’이라 불린다. 손씨가 며칠 전 봄이네오이에서 오이를 3만원어치 주문했기 때문에 이날은 특별히 사진 않았다. 다만 자영농장에서 판매하는 커피와 식혜를 여러 잔 사서 주변 지인들에게 사서 돌리느라 2만원을 지불했다. ‘철원팀’ 일원인 자영농장 주인 고미순(57)씨는 “마켓이 열릴 때마다 셀러들을 응원해주는 모습에 힘이 난다”며 “표면적으로는 돈과 물건을 교환하지만, 이 친구와는 항상 마음을 나누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용문산 덕동표고’라는 간판의 부스 앞에 선 손씨가 “이건 꼭 사야 한다”고 소리쳤다. 요즘은 버섯을 톱밥에 키우는 추세인데, 리버마켓에서는 참나무에 배양해서 키우는 표고버섯을 판매한단다. 조각조각 낸 생표고를 소금과 들기름에 찍어 한입 먹으니 입 안에 싱그러운 표고 향이 퍼진다. 손씨는 “참나무에서 키운 버섯은 육질이 더 단단하고, 항암물질도 많대요”라며 버섯 부스의 영업사원을 자처한다. 손씨는 손바닥만한 표고버섯 15개 남짓을 1만원 주고 샀다. 손씨가 아쉬운 듯 “단골인데 덤을 더 줬으면 좋겠다”고 하자, 셀러가 웃으며 큰 표고 두 개를 포대에서 꺼내 장바구니에 챙겨줬다.

먹거리만 사는 것은 아니다. 손씨는 마켓 한 편에 마련된 사진 촬영관에서 스스로 사진도 찍었다. 사진을 찍는 데만 3만원을 지불하고, 찍자마자 근처 ‘아야우드샵’이라는 목공방으로 달려가 어울리는 나무액자를 6만원 주고 샀다. 또 은공예 부스에 들어가 셀러가 직접 만든 은팔찌를 4만5,000원에 샀다. 은을 망치로 두들긴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팔찌를 착용하며 손씨는 “단 하나 밖에 없는 수공예품이라 갤러리에서 예술작품을 사는 것처럼 신중해진다”며 “지금 입고 있는 옷이랑 정말 잘 어울리죠”라고 밝게 웃었다. 오후 6시, 해가 느릿느릿 내려올 때쯤 손씨는 리버마켓의 폐장과 함께 장 보기를 끝냈다.

지난 5일 서울 성동구 새활용플라자에서 열린 '리버마켓'에서 손정미씨가 장을 보고 있다. 이혜미 기자
지난 5일 서울 성동구 새활용플라자에서 열린 '리버마켓'에서 손정미씨가 장을 보고 있다. 이혜미 기자

손씨는 마켓 장보기가 자신의 삶에서 ‘행복추구권’을 십분 누리는 행위라 말한다. 생활의 모든 것을 마켓에서 조달하는 일은 더 비싸고 더 불편하고 더 느린 일이지만, 손씨는 개의치 않는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물건이 아니라, 장인들이 직접 만들기에 기성 제품에 비해 가격이 비싼 편이다. 또 리버마켓의 경우 서울에서 열리는 마켓을 제외하곤 양양, 충주, 여주 등 교외에서 주말에만 진행되기에 시간을 맞추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씨는 마켓에서 물건을 사는 것이 몸과 정신 모두를 치유하는 방식이라 믿는다.

구릿빛 피부에 건강미를 자랑하는 손씨지만, 오랫동안 암 치료로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2007년 발병한 임파선암과 유방암 때문에 10년을 몸을 회복하는 데 썼다. 자연치료법을 택해 산에서 나물 뜯어 먹으며 세상을 멀리하고 자연 속에만 파묻혀 살던 시기가 여러 해였다. 그랬던 손씨가 우연히 가게 된 리버마켓은 그토록 헤맸던 자연과 건강, 좋은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농산물 하나를 팔더라도 어떤 과정을 거쳐 수확했는지 농민이 손님에게 하나하나 설명하는 모습, 아버지의 공예품을 팔기 위해 온 가족이 주말에 나와 판매를 돕는 모습에 반해 손씨는 매주 마켓에서 장을 보게 됐다.

손씨는 마켓에서 물건을 사는 것이 공동체를 단단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2014년 문호리에 리버마켓이 처음 열린 이후 황량했던 북한강변이 주말이면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 된 터다. 손씨는 “대기업 계열의 상점에서 물건을 사면 결국 재벌의 주머니로 돈이 모이게 되지만, 마켓에서 가내수공업자나 농민, 장인들의 물건을 사게 되면 지역 공동체로 부가 돌아오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손씨가 마켓에서 장을 본 총액은 33만8,000원. 현금이 두툼하게 들어있던 종이봉투가 홀쭉해졌지만, 손씨는 마켓에서 양 손은 무겁게, 마음은 든든하게 채우고 돌아간다.

지난 5일 서울 성동구 새활용플라자에서 열린 '리버마켓'에서 손정미씨가 장을 보고 있다. 이혜미 기자
지난 5일 서울 성동구 새활용플라자에서 열린 '리버마켓'에서 손정미씨가 장을 보고 있다. 이혜미 기자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물건을 파는 리버마켓에서는 '덕순네' 같은 친근한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다. 이혜미 기자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물건을 파는 리버마켓에서는 '덕순네' 같은 친근한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다. 이혜미 기자
농산물을 키운 농민이 직접 나와 팔아 더욱 싱싱한 표고버섯. 일회용품을 줄이자는 차원에서 리버마켓에서는 일회용 비닐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혜미 기자
농산물을 키운 농민이 직접 나와 팔아 더욱 싱싱한 표고버섯. 일회용품을 줄이자는 차원에서 리버마켓에서는 일회용 비닐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혜미 기자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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